본문 바로가기

감동이야기

아버지 체취

요즘 어머니 뵈러 집에 들릴때 마다 아버지 유품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내가 보관하고 싶은 것은 집으로 가져온다. 벨트 가방 모자 향수 등
실용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오래된 볼펜, 아버지 글씨체 적힌 이름표 낡은 보관함 등 단순한 추억거리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면 집에
보관할 곳도 없다고 아내는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다. ( 원래 내가 골동품을 조금 모으고 있어서 집이 어지럽혀지는 것을 아내가 싫어한다.)

어제는 아버지가 쓰시던 목도리와 겉옷 몇 벌 가져왔다. 다행히 형규도 좋아하는 옷과 모자가 있어 같이 가져왔다. 형규에게 맞는 작은 옷은 선물 받고 안맞아서 안입으신 것들인 것 같다. 내가 가져온 대부분 옷은 당연히 수 십 년 된 디자인에 넉넉하면서 꽤 무겁기까지 하다. 그래도 과거에 아버지가 입으셨던 기억들이 생생해서 내가 조금 고쳐 입으려고 가져왔다. 아내는 지금 있는 옷도 안입고 맨날 똑같은 옷만 입으면서 또 옷을 가져왔다고 핀잔이다. 다행히 내가 옷에 관심이 별로 없기에 (패션감각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사실 좋은 양복들도 많았서 일부는 가져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내 체형에 맞지 않아 포기했다. 수선비가 더 들 정도니 어쩔 수 가 없다. 주인이 따로 있겠지. 이모부님들이나 외숙부님들 중에서 아버지와 많이 가까우셨고 또한 아버지 옷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니 말이다. 학벌좋은 사장님 교수님들이 참 짤돌이 들이신데 아마 그만큼 아버지를 가깝게 느끼셔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존경하는 집안 어른이 계시면 나도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문제가 생겼다. 옷들을 일광 소독 시킬 겸 거실에 널어놨는데 효진이 수진이가 집안에 들어오면 할아버지 냄새 난다고 신기해한다. 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야 조금 느낄 수 있을 뿐 특별한 차이를 모르겠는데 아이들은 집안에 꽉 차있는데 모르냐고 내게 핀잔을 준다. 벌써 내 몸에서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간혹 수진이가 내 옆에서 할아버지 냄새가 난다고도 했으니 말이다.

오래된 옷에는 잘 모르겠지만 목도리와 셔츠에는 분명히 아버지의 체취가 남아있다. 이것들을 수선하고 드라이해서 여름 지나 입으려 했는데

드라이를 해야 하나 마나 망설여진다. 옷들 중에는 아버지도 오랫동안 안 입으신 것 들 도 있어서 우리집 장농에 그냥 넣어두기에는 조금 찜찜하고 그렇다고 드라이 하자니 아버지 체취가 없어질 것이 안타깝다.
이제 아버지의 남은 것은 내 마음속에 남은 과거의 추억과 이 오묘한 체취들 뿐인데 말이다.
조금만 더 거실에 널어 놓고 방안에 아버지 체취를 심어놔야겠다. 곧 우리 가족 것이 되어 냄새를 못 느낄 때 까지 말이다.

                                                                    ( 과거 여의도에 살았을때의 것 )

'감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나라 나무 (2)  (0) 2015.02.19
우리나라 나무 (1)  (0) 2015.02.18
아버지의 여운  (0) 2014.07.10
삼우제 후기   (0) 2014.07.08
병상 일기 9 ( 마지막 투병 )  (0) 201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