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역사 평가
모든 일에는 객관성이 있어야 뒷탈이 없다. 지금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현 대통령의 퇴임 후를 걱정하게 만드는 파인 씨티 특혜사건도
객관성이 없이 일부 특권층의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서민을 대표한다는 민노당의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결도 동일하다. 자본주의의 일방적인 피해자인양 떠드는 그들도 알량한 권력을
남용하다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권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동물적 본능이 앞선 권력이 있을 뿐 이상적인 권력은 없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된 역사기록이 남을 리가 없을텐데 하물며 과거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객관성을 기대할 수 없을것이다.
역사에 승자들의 주관성이 들어가면 그것은 역사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그만큼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객관적이 사실역시도 해석하는 각도에 따라 다른것이니 그만큼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몽고에 대한 기억이 안좋다. 엄청난 국가적피해와 왕족마져 원나라 공주를 받아들여야하고 하사받은 왕의 이름도 다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충忠자를 붙이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객관성이 없다. 수모의 기준은 우리의 사고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징기스칸이 10만 대군으로 25년간 30여개국을 점령해서 최대의 영토를 장악했는데 그중 국권을 배앗기지 않은 나라가
3개국 정도이고 그중 나라다운 나라가 유일하게 고려뿐이라한다.
무론 왕은 강화도로 도망가서 고려청자 만들고 지냈지만 민중들이 일어나 끝까지 항전을 하니 원나라에서는 왕족과 혼인하여
오히려 대우를 받은 나라가 고려이니 자부심 갖을만하다고 본다. 단순히 수모로만 생각하는 것은 객관성이 없는 것이다.
조선개국후 농지 개혁을 하여 농민을 우대하여도 민원이 끊이질 않아 세종때 다시 수정한 것이
‘ 풍년일 때 더 내고 흉년일 때 덜 내게 한다’ 는 것이다.
하지만 얼핏 보기엔 합당한 것 같은 이 법도 그 평가를 하는 관리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진 것이니 객관성이 없는 것이다.
개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면 부패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저 수년의 작황 평균을 내서 그것으로 정하는 것이 분명히 객관적인 것이다.
조선 왕조는 500년만에 망해서(1392~1910) 대한제국이 탄생했다고들 한탄하지만 국가는 항상 당연히 흥망 성쇄가 있는 법이니
오히려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그 시절을 기준으로 500년이나 지속된 대단한 장점을 탐구하는 것이 객관적인 역사관이다.
이웃인 중국도 진나라의 통일후 15년만에 망했고 유방의 한나라(200년) 수나라(40년) 당나라(300년)송나라(300년)원나라(100년)
명나라(300년) 청나라(300년)등으로 500년을 유지하는 국가가 없었다.
유럽에서는 그 당시 500년이상 지속된 나라가 유일하게 에스파냐(1492~현재)와 오스만 제국(1299~1922)뿐이었다한다.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왕국도 왕등극(BC336)후 사망할때(BC323)까지 고작 13년이며 그 이후는
3개국으로 ( 이집트. 시리아, 마케도니아)로 나뉜다.
영국도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될 때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음으로써 현재의 연합왕국이(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북아일랜드) 되었고 미국역시 250년이 안된다.
물론 로마의 영광은 있으나 감히 누가 로마와 비교하겠는가?
로물루스가 로마시를 건설했다는(BS8C) 전설을 제외하고 공화정 시작(BC509)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제정시기(AD27) 을 지나
서로마 멸망까지(AD476) 약 천년을 유지했으며 동로마제국까지 생각하면 (AD 1453) 2000년의 영원한 제국이다.
일본의 경우 삼국지에는 3세기에 여왕 히미코가 다스리는 야마타이국을 중심으로 하는 30에 가까운 나라로 된 연합국가로 지속되어온
기록이있으나 섬이라는 특성상 외부의 침략을 받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어 대륙의 국가와 비교에서는 예외로 보면 어떨까 싶다.
< 향락에 젖은 로마 > 영화의 한장면.
반면 우리나라는 거의다 500년을 넘긴다.
신라(BC 57-935; 992년) 고구려(BC37-668; 705년) 백제(BC18-660; 678년) 고려(BC918-1392; 474년)이다.
왜그럴까? 순진하고 무지한 백성들이 왕을 섬기는 노예근성때문일까? 왜 반란이 일어나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투쟁이 없었을까?
우리나라는 무관보다 문관이 권력을 장악해서 무력을 통한 쿠데타가 불가능해서일까?
서양역사와는 다르게 우리나라 왕은 무관상보다는 선비상이 강했다.
또한 곁에있는 중국을 모시는(?) 고개 숙인 외교로 큰 방패막이를 두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한심한 나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명한 외교술이라 생각한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중국도 미국과 군사력으로는 경쟁하지않고 자체 방위 수준에서 머무는 것은
군비경쟁을 통한 자기 파멸 과정을 겪은 역사적 사실을(로마에 대한한 카르타고, 미국에 대항한 소련등) 누누히 봐 왔기 때문이다.
미국도 국방비를 줄여 국내 정치에 투자하고 싶어도 이미 너무 속도가 붙어 어쩔 수 없는 자승자박의 지경일 것이다.
외교적 처세술로 서로 보완하면서 보호를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자주 국방이 겉보기에는 폼날지 몰라도 많는 국민들의 희생이 따르게 된다. 폼생폼사는 외교술이 아니다.
내나라와 내겨레를 내 힘으로 지키되 다른 선진국들이 내 나라를 보호 해주지 않으면 본인들에게도 큰 피해가 갈 상황을 유도해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 지랫대를 이용하듯이 힘을 분산 시키는 것이 진정한 외교이다.
(사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핵무기 협박은 자체 외교 방식으로는 현명한(?) 외교라 본다.
이미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는 앞뒤 가릴것 없이 무서운 존재들이다. 핵을 포기한 리비아의 가다피가 당한 꼴을 봤으니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그들만이 가능한 뚝심의 무대뽀 외교술이다.)
지리적으론 대륙의 끝이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적당한 선에서 유지했고 전쟁시 백성들이 왕의 생사에 관계없이 항쟁을 할 수 있는 자존심을
겸비한 민족이기에 그 오랜 세월 한국가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는 전쟁으로 자신의 상관이 죽으면 바로 승자의 부하가 되는 전통이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는 우리민족은 참 질기고 성격 더러워(^_^) 항복을 모르는 민족성을 지녔다.
조선시대 세종의 정치( 농지개혁을 독단으로 하지 않고 13년에 걸쳐 정승들과 상의, 실험 후 실행) 법률 ( 사형에 삼복제-현재의 삼심제-를 둠) 복지(노비에게도 출산 휴가를 3개월 이상줌 ) 등의 어진 행정이 그 원인이라기엔 너무 이상적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국민이 6.25 전쟁 폐허후 60년 만에 현재의 상황을 이룩한 것 보면 정말 질긴 근성 하나는 인정 받아야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성과를 이룩하여 삶의 질을 높여준 우리시대 연장자들을 젊은 세대는 존경하고 감사해야 한다.
만약 이들이 이룬 성과의 반의반만이라도 젊은 세대들이 이루어 준다면 우리나라는 최고의 선진국이 될 것이다.
우리들의 귀중한 보배인 그들은 과거 기성세대의 헛점만 불평하지 말고 자신들의 의무도 곰곰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다짐해야한다.
장단점의 모든 우리 민족성은 무조건 위대하고 훌륭한 근성이다.
참고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허성도 교수님 강의록
네이버 검색
2012.5.6
<말이 필요없는 그 순간들 >
'감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 (0) | 2012.05.10 |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 (0) | 2012.05.09 |
어원 語原 (0) | 2012.04.30 |
예쁜 삶 (0) | 2012.04.24 |
예술의 해석법 (0) | 2012.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