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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자극적인 메스컴과 분출되는 분노


혁명과 전쟁, 산업화와 빈곤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는 고통이 가득한데, 오페라가 구시대의 화려함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고 가난한 농어민, 노동자들의 삶을 소재로 삼아서 현실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게 되는
베리스모( 진실주의 또는 극사실주의)라는 사상이 일어난 것이 19세기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은 사진일 뿐 예술이 아니라는 예술가도 적지않게 있었다한다.
그런데 과연 모든 사건에는 수많은 주관적인 원인이 있는데 사실 그대로를 전달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까?

예술의 중요성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도 있지만 인간의 선한 본성을 깨우쳐주는 기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꼭 적나라한 현상만을 고집할 것이아니라 이상향을 추구하여 과거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는 동기를 주고 또한
수많은 해결 방법의 물꼬를 터준다면 그것은 과연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은 모든방송에서 예의를 갖춘 대화나 내용보다는 자극적인 언어구사와 사건 전개로 상대방을 당황하게하여
시청자에게 기쁨(?)을 주는 가학성 경향이 있다.
이것은 기쁨이라기보다 색다른 자극일 뿐 인데 반응 좋은 시청률로 인식되고있다.
방송매체는 오직 광고수익으로 인한 이득만을 생각하며 시청률에 목을 매고 있고 시청자들은 보다 더 자극적인 것에 혈안이 되어
수많은 매체를 돌아다니며 인간의 본성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영화에서도 적나라한 표현이 현실 자체를 묘사한다는 미명하에 심의를 무사히 거쳐서 모든 국민들에게
각자 강한 송곳을 선물하며 투사가 되기 위한 세뇌를 시키고 있다.
시민들 특히 청소년들의 대화 수준이 격해지면서 언어의 그림자인 행동이 그에 상응하는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간혹 방송에 나가도 되는 표현일까 하면서 놀라던 나도 요즘은 왠만한 자극적인 표현에도 별로 놀라지않게
무뎌졌으며 오히려 조금은 즐기는 듯 하는 나자신을 느낀다.

세상에는 항상 자극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연꽃잎에 담긴 이슬방울이 소리없이 흐르듯 삶에는 은은한 깨달음이 있어야한다.
결코 과정을 무시한 빠른 결과만이 최상의 것은 아니다.
일류 아닌 삼류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버젓이 내 주위에서 숨쉬고있는데 요즘 예능매체들은
사실을 비웃으면서 청소년들 뿐 아니라 많이 성인들을 오도 하고 있다.
학교 폭력, 군대 사고, 노사 문제, 빈부 격차 이런 모든 것의 바탕에는 과도한 자극에 취한 세태의 녹슬음이라면 과한 것일까?
각자의 송곳이 너무 예리하다.
이런 부작용을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크게 감당해야할 몫인데 기성세대들이 오직 경제적 이해타산에만 눈이 멀어
앞만 보며 달린다면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을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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