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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청춘예찬



양떼구름처럼 몰려드는 시험에 찌들어 허걱거리며 보냈던 학창시절을 뒤로하고 간신히
졸업하여 햇병아리 의사가 된지 20여년이다.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의학에 박식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내 전공 분야에 있어서는 환자를 ‘잘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특별한 것을 갈구하며 어리숙한 자신을 담금질하고 살아온 삶 전체에 비하면 짧다 하겠지만

강산이 두번 변할 기간이니 내게도 상처난 훈장으로 많은 성숙이 있어왔다 자부한다.

수많은 치기어린 실수와 정열의 화기(火氣)속에서 일궈낸 부질없는 인생 단막들이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는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다른이들보다 보다 더 많은 경험과 더 깊은 성숙을 하고자 괜한 조바심으로 살았던 날들, 애뜻한 연애감정에

모든 것을 헌신했던 순수한 순간들, 사회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꿈틀했던 사건들, 못난 자신을 피해 술을 벗 삼아 산속에 묻혀 세상을 잊고자 했던 시기등 살아가면서 내 삶의 일부가 된 수 많은 경험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으니 절대 가치없는 과거는 없다고 믿는다.
내가 지금 갖고있는 모든 삶의 기준은 과거의 수 많은 경험의 산물이니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타인들과의 생각 차이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한때의 젊음에 대한 애착과 미련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내 세대면 다 똑같이 학교에서 선생님께 맞고 그나마 없는 머리도 깎기면서도 순응했다.
사회의 억압된 분위기로 아무 반항 못하고 개혁보다 전통을 중시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들이다. 그래도 난 다른 성실한 동료들 보다는 곁눈질을 많이 한 편이라 다양한 얼룩이 있는 까닭에 무미건조한(성실한?) 단색의 고운 양탄자 보다는 값이 더 나가지 않을까 하고 근거가

전혀 없는 자아도취 속에서 오늘도 어제처럼 반복해서 산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정도는 이기적인 것 이겠지만 환자들을 대해보면 무표정한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고민을 혼자 해결하는 듯한 무거운 기운을 느끼게 하는 이들도 있다.
다 살아온 과정에서 이루어진 개인의 성향 탓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때면 과연 내 얼굴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궁굼해하며 진료실의 작은 거울을 통해 왠지 어색한 한 남자의 얼굴을 겸연쩍게 마주대하곤 한다.

젊음의 안식처를 떠나온지 꽤 되어가지만 그래도 내심 만족하는 것은 연륜과 함께 내적 충만이 이루어 진다는 자부심이었는데

여전히 소아적 충동을 벗어나지 못할 때가있다. 자식 사랑으로 자꾸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냥 웃어 넘기며

현명하게 처신 못하는 것을 보면 한참 멀었다. 매일 와서 똑같은 하소연을 하는 노인 환자들을 대하면서도 마음을 비우고 다가가지 못할때가 과거 보다는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 멀었다 싶다.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길 사십이 불혹( 四十而 不惑)이라 했는데 오십을 바라보는 다섯
식구의 가장이나 되는 지금도 그런 마음을 조절 못하고 감정의 흐름대로 표정을 그려간다.
지나면 다 이해될 일이겠지만 그저 시절을 그리워할 연배일 뿐이니 이루어놓은 것 없이
하늘을 처다보는 허망한 마음이다.

내 인생의 최 절정기를 아직도 뚜렷이 기억하고 미련을 갖으면서 다시 경험할 수 있을것이라 내심 최면을 걸곤 하는데

벌써 내 아들이 그 자리에 소리없이 다가온다. 인만즉상(人滿則喪; 사람이 다 차면 잃게 된다)이라는 명심보감의 명언을

조금씩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면 억지일까? 저 멀리 떠나버린 젊음을 대신하기 위해 아무리 내공을 단련 시키려 해도

다 각자의 달란트가 있어 변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니 안되는 것은 그저 장점과 어울리는 나만의 단점으로 어여삐 받아드려야 하나 보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젊은이들의 환한 광채는 어떤 관상의 해석도 불필요한 무릉도원의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활기찬 걸음과 꼿꼿이 세운 자신감 넘치는 정열은 진료실 책상 너머로 파도처럼 내게 다가온다. 부드러운 머릿결의 살랑거림과 깊고 맑은 눈빛으로 소리없는 향기가 방안에 그윽하게 퍼진다. 땀에 젖은 탄력있는 구리빛 피부에 덮힌 근육의 육중함은 이면지 같은 나의 손을 더욱

처량하게한다. 도대체 그들은 인상을 써도 그저 멋있을 뿐이다. 속없는 말을 내 뱉기 전까지는.

그들의 생각이 성숙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빛나는 광채와 풍겨오는 정열 그리고 부드러우면서 강한 피부의 탄력은 부러움마져 느끼게한다. 한때는 내게도 젊어서 참 부럽다는 말씀을 해주신 어른이 계셨다. 그땐 그 가치를 몰랐다.
하긴 그러니 젊겠지.
연장자 못지않는 심오한 사고를 갖고 있다면 그게 젊은이일 수 있겠는가?
기억의 바다에 다양한 모양의 배들이 떠있는 부류와는 같을 수가 없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순수한 치기를 미소로 보듬어야 진정한 연장자이리라.

어짜피 세월따라 흐르는 물에 실려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상 젊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대 자연에 소복히 내리며 빛의 반사로 존재를 알리는 눈송이와같이 덧없는 세월의 훈장같은 자욱이 얼굴에 잠복하는 듯 소리없이 남는 요즘
이젠 더 늦기 전에 내적 성숙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삶의 긴장감을 느낀다.
건강할 때 중년을 충실히 만끽하자. 나도 노년층에게는 젊은 사람이다.
중년엔 내적인 충동이 줄어 마음의 평화를 접하기 쉬우니 좋긴 하지만 그래도 활력있는 젊음은 아직도 솔직히 부럽다.

피천득 선생님의 청춘예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 청춘,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래는 말이다”
그 청춘들을 보듬어서 아름답게 물려주기 위해 보잘 것 없는 나의 최선을 다하여
어제의 흐름을 따라 세월에 순응하며 오늘도 내일도 힘차게 고개들고 가련다.
나는 아직도 일부분은 청춘이다.
꿈이 멈추는 순간이 바로 늙음의 시작이니까.
“ 아자!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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