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8월 18일
【45년전 오늘은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이 사실을 대한민국 학교의 교육에서는 가르칠까요? 아는 학생들이나 있을까요?
평화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것도 모르면서 평화만을 이야기하는 미친 세상의 미친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현 정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측의 과도한 대응에 유감을 표한다고하며
아직 레드라인은 넘지 않았다고 할겁니다◆
Si vis pacem, para bellum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이 사건이 있던 다음날 박정희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언젠가 대한민국에 있는 미친개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보니파스 대위와 베렛 중위의 고귀한 희생에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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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1976. 8. 18
1976년 오늘, 대한민국 판문점에서 발생한 통칭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했다.
"도끼만행사건"은 남북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내에서 발생했다. 이곳 영내에 일명 "돌아오지 않는 다리(Bridge of No Return)" 옆에 약 30m짜리 포플러 나무가 하나 서 있었는데, 이것이 계속 자라기 시작하면서 유엔사(United Nations Command: UNC) 쪽의 3번 검문소와 5번 관측소(OP) 시야를 가리게 되었다. 3번 검문소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바로 옆에 있던 검문소로, 한측의 위치에서 보자면 지역 내 최북단에 위치한 검문소였으며 겨울엔 시계가 짧아 5번 관측소에서 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은 정확히 이 다리를 반으로 양분하고 있었다.
이미 이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도 인민군은 이 지점에서 근무하는 한측 및 UN사 병사들을 납치하려는 시도를 했었는데, 이런 문제 때문에라도 이 관측소가 가리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 사건 직전에도 검문소 주변 진지에 있던 미군 병사들을 북한군이 납치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때 미군은 아더 보니파스 대위가 이끄는 구출 부대를 파견하여 이들을 구해오는데 성공한다. (참고로 보니파스 대위는 도끼 사건으로 살해 당한 두 명 중 하나임)
76년 8월 18일, 다섯 명의 KSC(Korean Service Corps) 소속 근무원들은 이 포플러 나무 가지를 쳐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 다리 위로 올라왔다. 이들은 보니파스 대위, 한측 중대장인 김 대위(이름이 정확히 안 나옴-_-), 마크 베렛 중위, 그리고 11명의 한-미군 병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이들은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한다고 사전에 인민군 측에 통보를 한 상태였다. (통상 작업이었으므로 문제의 장교들은 권총 등만 휴대하고 있었다고 함)
작업이 시작된 후, 박철 상위가 이끄는 15~16명의 인민군 병사가 다리 맞은 편에 나타나 약 15분간 가지치기 작업을 지켜봤는데, 그는 갑자기 작업을 중단하라고 외치며 '김일성 주석께서 직접 심으셨고, 직접 키우셨으며, 직접 관심을 갖고 지켜보시는 나무다'라고 주장했다. 보니파스 대위는 그를 무시하고 등을 돌린 채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갑자기 쇠 지레와 몽둥이를 든 북한군 병사 20여명이 탑승한 트럭이 추가로 도착했고, 박철 상위는 다시 한 번 작업을 중단하라고 소리쳤다. 보니파스 대위가 다시 이 말을 무시하자 박철은 손목시계를 풀어 손수건에 조심스럽게 싸 주머니에 넣더니 "저 망할놈들을 죽여라"고 외치면서 등을 돌리고 있던 보니파스 대위의 뒷목을 가격했다. 이들은 KSC 근무원들이 쓰던 도끼를 뺏어 보니파스 대위와 베렛 중위를 살해했으며, 한 명의 UN사 소속 병사도 부상을 입혔다.
보니파스 대위는 즉사했지만 베렛 중위는 부상을 입고 다리 옆 담 아래로 뛰어넘어 피했었는데, 실제 이 싸움은 2~30초 만에 벌어졌고, 이후 유엔사 소속 병력이 뒤에서 올라와 북한군을 쫓아냈다. 이들은 당시 보니파스 대위의 사체를 자신들이 타고 온 트럭에 싣고 있었다. 이 혼란 상황은 90분간 지속됐으며, 실종됐던 베렛 중위도 치명상을 입은 채 쓰러져있는 것이 발견되어 긴급하게 후방으로 의무 후송(MEDIEVAC) 시켰다.
북한은 이후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미제가 원래 합의를 한 후 작업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나무를 베려 했다. 우리가 주의를 주려 하자 공격을 가해와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방어를 했을 뿐"이라고 방송했다.
8월 21일, UN사령부는 문제의 포플러 나무를 가지치기 하는 대신 아예 밑둥부터 잘라버리기로 결정했다. 통칭 작전 명 "폴 번니언"이라 명칭된 이 작전의 골자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다리 주변을 확보한 후 문제의 나무를 잘라내는 것이었다. 리처드 스틸웰 장군이 입안한 이 작전은 이틀에 걸쳐 계획된 후 실시됐다. UN사는 작전 실시 5분이 됐을 때 북한군에게 통보하며 "지난 번에 하다 만 작업을 마저한다"고 말했다. 한-미 연합부대가 다리에 접근하자 북한군은 중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따라 올라와 다리 맞은 편에 대기하곤 있었지만, 이들이 나무를 잘라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은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이후 지원용 헬기가 뜨자 북한군은 흩어져 기관총 진지에 들어가 있었지만, 42분 후 나무가 쓰러질 때까지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이후 UN사 측은 북한군에게 항의하며 책임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했는데, 북한군은 김일성 명의로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을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김일성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간 판문점에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아온 것은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번 판문점 사태에 대해서는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태가 재발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양측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도발하지 않았으며 방어적인 행동에서 야기됐을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참고로 문제의 도끼는 개성 노동당사에 피묻은 채로 전시 중이라고 하며, 폴 번니언 작전으로 잘라낸 나무 몸통은 용산 전쟁기념관과 미 제 2사단 박물관에, 밑둥은 용인 지상작전사령부 역사박물관 안에 보관 중이다. 이후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의 기지는 전사한 보니파스 대위를 기려 "캠프 보니파스"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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