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내 개인적인 보물이 많다. (물론 가족이 제일 큰 보물이다.) 주로 골동품수준의 것들로 값보다는 개인적인 추억만 쌓여있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는 가장 큰 보물은 47년된 야마하 피아노다. 일본에서 살던 1970년도 유치원 시절부터 나와 함께 하던 것이다. 초등학교 초년시절 피아노 치기 정말 싫어하던 우리 삼형제는 어머니 등살에 피아노를 힘들게(?) 배웠다. 1973년에 한국에 돌아올 때 어머니는 무거운 피아노를 가져오셨지만 나머지 4명의 집안 남자들에게는 찬밥신세였다. 나는 피아노 뚜껑을 그 이후로 열어보질 않다가 중학교 사춘기 시절 조금씩 영화 음악을 치곤했다. (그래도 조금 배워 놓은 것이 있어서 독학이 가능했다.) 그러다 고3 대입 준비를 할때 옆집 누나의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아 감동했고 시험 마치자마자 한달 동안 아마 3곡을 열심히 연습한것 같다. <my way> < exodus > <love story> 였던것 같다. 그때는 4~5일 이면 한곡을 어느정도는 칠 수 있었는데 요즘은 한달이 되어도 한곡을 치기 힘드니 그만큼 내 머리가 둔화 된듯 하다.
그 이후로 대학을 들어가서는 산악부 생활을 하느라 다시 피아노를 열어보지 않고 살았다. (일요일 교회도 마다할 정도로 산에 빠져있었다.) 결국 다 까먹어 피아노앞에서 할 일이 없어지고 간혹 다시 쳐 보려 해도 피아노 악보를 다 분실해 버려니 도대체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새로운 악보로 연습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것도 엄두가 안나 결국 시작도 못하더니 시간을 훌쩍 20여년이 흘러 버렸다. (그래도 원주와 대전으로 이사 하면서도 그 무거운 피아노를 돈을 더 주고라도 기어히 옮겼으니 나도 애착이 있긴 있었나보다. )
그러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작년부터 피아노와 이론 교육을 시작했다. 큰 마음먹고 집에있는 피아노 수리를 부탁하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적은비용이 들었다. 사실 엄청난 수리를 해야하는 줄 알았는데 피아노 전문가 말씀이 워낙 야마하 피아노는 잘 만들어서 앞으로도 30 년 이상 잘 쓸 수 있다고 한다. 정말 일본은 대단하다. 요즘도 피아노 수리에 사용하는 드라이버는 중국산은 몇일, 한국것은 한달 만에 갈아야하는데 일본것은 몇년이 지나도 튼튼하게 잘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왜 아직도 그럴까?
모든 준비는 다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내가 나이들어 부실해져 있었다. 확실히 손이 말을 안 듣고 악보가 외워지질 않는다. 피아노는 여전히 좋은데 연주자가 많이 녹슬어 버렸다. 그래도 치매 방지 교육이라 생각하고 시간 날때 마다 조금씩 계속 해보려한다. 간혹 치다 보면 외웠던 악보에서 막혔던 한 소절이 갑자기 손으로 쳐지는 경우가 있으니 계속 두드려볼 생각이다. 그럼 어느 순간에는 한곡으로 완성 되겠지. 아니면 말고.
(1970 년 부터 나와 함께한 야마하 피아노. 참 많이도 이사했다.
일본에서 서울 대조동에 와서 여의도로 갔다가 여의도에서 2번 더 이사후 나를 따라 원주, 대전까지 그리고 서울로 다시
와서도 2번 더 이사했으니 말이다. 총 9번을 이사했네 )
( 낮은 음은 한줄 중간음은 두줄 높은음은 세줄로 음을 내고 있었는데 이런 방법은 200년전부터 똑같이 이어온 것이라 한다.
조율사의 이야기로는 피아노의 모든 구조는 전혀 발전이나 변형이 없이 똑같이 전수되어왔다고 하네...
특히 야마하 피아노는 그만큼 완벽해서 내것이 약 50년전에 만든 것인데도 바로 최근에 만든 제품같다고 한다. 앞으로도 30년은 너끈하다니
내 인생과 거의 다 같이하게되었다.)
( 꿈 많았던 대학 시절 아마 1984년 여름일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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