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지하로 뚫어 여의나루역이 생겼다. 한강위 다리로만 연결되던 여의도( 汝矣島 ; 너도 섬이냐 )가 이제는 지하로 연결되어
발전에 속도가 붙었다.
목화 아파트의 청기와 지붕은 여전하고 그 당시 제일 비쌌던 서울 아파트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했다 보다.
여의도 고등학교는 인조 잔디로 바뀌고 저 멀리보이는 우리때 세웠던 생활관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다. 오래된 본관은 새건물과 다리로
연결 되어있고 돌에 새겨진 "진리 탐구'교훈은 묵직하게 교문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저 앞을 선도부원들이 항상 지키고 있었지.
바로 고등학교와 교문을 마주보고 있는 여의도 중학교를 다녔다. 학교는 여전히 우리때 올렸던 5층 그대로이다. 그 옛날 어느 월요일 아침 조회때 아무 안전 설비없이 5층에서 공사하던 인부가 떨어지면서 3층 난간을 본인이 잡고 살았는데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었지.
무엇이 잘못된지도 모르는 참 무식한 시대였다. 선생님들의 전유물이던 테니스장에는 작은 매점이 생겨있다. 그 시절에는 고등학교 들어가면
매점이라는것이 있어서 학교에서 먹을 것을 사먹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컸었는데 지금은 이곳에도 있다.
운동장은 여전히 잔디가 없지만 저 멀리 여의도 초등학교가 보이던 방향에는 멋진 체육관 건물이 생긴듯 하다.
수년간 등교하던 길가의 가로수들과 자주가던 장미분식집도 그 건물에 여전히 건재하다.
내가 수년간 지나가던 그 등교길을 걸으면서 삼부와 장미 아파트단지 사이를 지난다. 내가 6학년 겨울방학때 처음으로 영어 알파벳을
배우면서 자주오던 수정 A동을 보며 그 예뻤던 여자 선생님을 생각했다. 우리때는 그때 영어 배우는 것도 빠른 것이었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 수진이의 영어 학원 숙제를 나는 도와줄 수 없다. 너무 어려워서 ㅠㅠ) 학원 마치고 친구들과 장난으로 1층에 있는 응급 환자 벨을 누르고 도망쳤던 수정 산부인과가 3층에 아직도 있고 입벌리고 치료받다가 준비한 금니를 삼켜버린 나를 화내지도 못하시던 김성일 치과의원도 아직 여전히 수정상가에 간판을 걸고 있다.
장미 아파트와 대교 아파트 단지 사잇길을 걸어가면 우리때 없던 여의도 여고가 나온다. 과거에는 인적이 드물던 음침한 길이었는데 여고생들의 정기로 이쁜길이 되어있다. 대교 아파트를 옥상에서 연결해주는 소방 대피길도 내가 친구들과 자주 놀던 아찔한 장소였다. 저곳에서
풍선에 물 넣고 길가는 사람 놀래키려고 아래로 던지는 장난 치다가 화나서 뛰어 올라온 어른에게 잡혔다. 결국 입에 풍선 물고 손들고 한참 길에 서있었던 그 놈들이 이제는 다 자녀를 둔 50대 아빠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때였던것 같다. 그때 우리 멱살 잡고 끌고 갔던 대학생 형아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
자주 가던 대교 상가의 문방구점은 이젠 사라지고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 아저씨가 나를 참 좋아해주셨는데...
" 넌 서울대 갈 줄 알았는데..." 하면서 내게 비수를 꽂으셨던 분들이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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