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6동 앞을 지나 시범 공원으로 들어섰다. 이곳도 내가 많이 달리던 곳이자 무엇보다 내게 큰 상처를 준 곳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저 마리아 동상을 주위로 과거에는 수영장이었다. 중앙에 있는 저 동상을 다이빙대 삼아 첨벙 풀장으로 뛰어내리곤했다. 1974년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방학때 그곳에서 큰 수경을 쓰고 놀다가 다쳐서 얼굴을 60바늘 가까이 꿰맸다. 친구 형의 무릎에 수경 유리가 깨지면서 얼굴에 조각이 박혔는데 눈으로 물이들어가니 겁나서 벌떡 내가 일어나게되고 박혔던 유리조각이 수압으로 밀리면서 피부가 더 찢어져 버린것이다. 한국으로 와서의 첫 여름방학인데 황당한 일이 생기고 만것이다. 피범벅이 된 나를 수영장에서 꺼내준 교복입은 누나,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친구의 아버님 그리고 나를 치료해준 순애의원 원장님. 누워서 꿰매는데 저 멀리 병원 입구에서 쓰러지는 어머니가 생생히 기억난다. 눈 앞에서 물안경 유리가 깨졌는데 눈을 안다쳤으니 기적이지 행여 눈을 다쳐서 장님이 되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여간 나로 인해 그때까지 유리였던 물안경은 플라스틱으로 교체되었다.
공원을 지나면 12동이 보인다. 내가 6학년때 이사간 곳이다. 12동 43호. 역시 모든 싸인물이 과거와 같다. 30평대인 5동에서 40평대인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엄청 신기해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때 내 방이 처음으로 생겼다. 뒷마당이 잘 보이는 파란 카페트 깔린 방이었다. (기억에는 화장실도 따로 있었던 듯?) 풍수지리상 그랬는지 그때부터 공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전교 1등도 해보며 첫사랑을 느끼는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교회도 공부고 운동도 사랑도(?) 다 열심히 하던 내 인생 최고의 절정기였다. 그 아파트는 정말 외형 하나 안 변하고 (페인트 색까지) 그자리에 그대로 서있다.
주위 나무들은 아름답고 훤칠하게 성장했다. 세월의 거름을 잘 먹고 자란 것 같아서 진한 가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공원 중앙에 당시로서는 멋진 첨단의 분수대가 있었지만 그래도 흙모래 뿐이던 시범공원이 지금은 그 분수대를 없애고 산책길과 나무들로 정말 공원다운 공원이 되어있다. 지금은 미국에서 치과의사로 잘 산다는 옛 친구 김성수의 집에서 (시범 1동?) 밤새워 공부하고 새벽에 투벅투벅 집으로 걸어가던 공원길이었다. 그 친구의 이쁜 누님은 지금 뭘하고 계실까? 정말 이뻤는데...
( 가운데 덩그렇게 분수대만 있고 순전히 모래 흙 바닥뿐이던 시범 공원이 이렇게 변했다.)
시범 14동 앞을 지나 수년간 수없이 건너던 건널목을 건너면 내가 다니던 (막내 동생은 수영선수 수준이 되었던) 수영장있는 한양상가가 있다. 워커맨이 처음 나왔을때 친구에게 빌려서 밤에 심취해서 걷다가 엄청난 굉음과 합께 급정거하는 택시가 내 옆에서 멈춘적이 있었다. 그땐 모르고 지났지만 내가 운전해보니 늦은밤에 혼자서 건널목을 해드폰 끼고 다니는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나중에 알겠다. 그때 뺑소니 사고 났으면 난 이세상 사람 아닐것이다. 대교상가 옆의 입구를 통해 한양아파트 단지를 들어선다. 내가 대학교 3학년때 이사간 곳이다. 68평이었으니 당시로도 대단한 평수였다. 이사후 한동안은 전화밸이 울려서 전화 받으러 나가는데 한참 걸렸었다. 35평에서 46평을 거쳐서 68평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리 삼형제는 부모님을 잘 만나 호강하면서 살았다. 초등시절 학교로 찾아온 어느 여성 잡지책 기자가 각자 학년별로 제일 좋은 도시락을 골랐는데 우리 삼형제 것이 전부 학년 대표로 뽑힐 정도로 어머니의 정성은 대단하셨다. 물론 어머니의 강한 교육열로 우리 삼형제는 시험 성적때문에 무지하게 맞았다. 초등 3학년때 한글을 모르고 일본에서 전학 온 나나 내 동생들이나 다 참 힘들었었다. (쪽바리라 놀림 당하면서 싸움도 많이 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고 놀림당했는데 말이다. ) 우리 삼형제도 나름 열심히 살아오긴 했지만 지금 우리의 모든 성취는 다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의 덕이라고 믿는다. 우리 가정이 현명한 부모님으로 인해 단 한번도 크게 (작게는 몇 번 있었고) 뒷걸음 친 적이 없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내 가족을 그렇게 키워 동일한 평가를 자식들에게 받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다.
한양 아파트 F동 앞의 작았던 나무가 지금은 너무나 울창하게 잘 자랐고 뒷 마당의 모래바람 일던 공원도 잘 정비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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