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 아파트단지에서도 우뚝 솟은 63 빌딩이 보인다. 사실 나는 과거 여의도의 수많은 아파트와 건물들의 터파기 공사부터 완공까지
다 봐온 터라(시범아파트만 제외하고)건물의 준공 속도에는 감각이 있었다. 그런데 63 고층 빌딩은 아파트 완공 가능한 시기까지도
계속 터파기 공사를 해서 참 신기해했다.
여의도의 윤중재는 현재의 내 건강을 만들어준 곳이다. 항상 밤이면 시범아파트 공원을 돌아 여의도 윤중제를 뛰었다. 지금의 성모병원
쪽으로 현재 벚꽃 축제의 멋진 벚꽃나무들은 당시에는 앙상한 가지 수준이었다. 무슨 체력이었는지 매일 밤 10시면 나가서 뛰었다.
약 30~40분을 뛰었으니 3~4km 는 될듯 한데 거리도 거리지만 그때는 차도 안다니고 인적도 거의 없었다. 고요속에서 나의 가로등
그림자를 벗삼아 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엉성한 돌무덤 투성이에 사용 안하는듯한 군부대 벙커가 있고 삐라 줍던 곳이 지금은
수많은 고층 빌딩숲이 되고 한강변에는 수상 택시장, 유원지들로 이루어진 한강 공원으로 잘 정비되어있다.
( 1974~5년에는 여의도에 건물이 별로 없어서 이 자리에서 저기 멀리 국회의사당까지 보였다.)
윤중제를 따라 원효대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시범아파트의 굴뚝이 보인다. 1973년 선진국일본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올 때 가장 먼지
내 눈에 띤것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엄청 높은 건물 수준이었다. 아파트 단지 보일러 굴뚝으로 그 상가에는 목욕탕이 아직도 있다.
지금은 대형교회로 발전 했지만 이곳의 태권도장을 일요일마다 빌려서 예배를 보기 시작한것이 지금의 여의도 침례교회의 모체였다.
이 자리에서 뒤돌아서면 내가 처음 이사 온 시범 5동이 공원 너머로 보인다. 관리를 잘해서 그런지 옛 모습 그대로다.
1960녀대 말에 마포 와우 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지고 1970년대 초에 지은 첫 아파트라 특별히 단단하게 지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건물이라
그럴것이다. 그 앞의 넓은 공원은 방과후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겨울마다 스케이트장이 되어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곳이었다.
모든 것이 바로 몇달전에 살던 일본과 수준 차이가 났지만 처음 느껴보는 겨울의 추위와 얼음 놀이는 나를 한국의 생활에 매혹 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살던 5동 113호의 대문 표시물과 편지함은 내 기억에는 과거와 거의 같은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와 복도에 붙어있는 층별
표시물도 글씨체가 똑같다. 11층에서 보이는 경치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 느낌은 여전했다.
우리 삼형제가 기억하는 추억의 그 쓰레기통 투입구도 그대로 있다.
퇴근해서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졸라서 베드민턴 치던 공간도 그대로다. 나만 변한것 같다.
아파트를 나와 좌측으로 직진하면 여의도 초등학교에 다다른다. 그때는 참 먼 거리였는데 지금은 지척이다. 원효대교를 오르는 길로 인해 학교 경관이 가려졌다. 중학교때 학원 끝나고 친구들과 축구하던 지하도가 그대로다. 바로 앞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아주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있다. 초등학교 운동장이 작아 그때도 100m 달리기를 운동장 대각선으로 하고 골인지점의 학교 벽에는 매트리스를 올려 벽에 부딪히지 않게 했었다. 참 열악한 환경이 그대로다. 지름길로 가려고 옆의 중학교 학생들이 초등학교 담넘어 수업하는 학생들 사이를 그냥 지나다니는 것을 보니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승진에 관심이 없나보다.
( 아니면 여의도에 사는 초등학생들이 별로 없나? 학부형들이 저런 모습보면 가만히 안둘것 같은데...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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