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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나쁜 버릇


언제부터인가 대화중 상대방의 말을 끊는 버릇이 생겼다.
아주 무례한 버릇인 것은 아는데 직업적인 것이라고 변명하면서도 자꾸 대상이 넓어지는 것같이 조심스럽기까지하다.

어떨때는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버릇이 나타나 나도 깝짝 놀라게 된다.

어느 순간 부터 결과가 뻔한 대화의 중간 과정을 참고 듣지 못하고있는 나를 느낀다.

환자를 대하다 보면 하루 100여번을 같은 말을 하게 된다.
‘ 걸어오시는 모습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 처음 병원 왔을 때 아픈 것 100점이라면 지금 남아있는 통증이 몇점이나 되죠?’
‘ 요즘 운동은 조금씩 하시나요?’
등으로 진료를 시작해서
‘ (컴퓨터 화면 방사선 사진 보면서 ) 커브가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 이렇게 굳어있네요’
‘ 밤마다 하루 피로를 풀게 꼭 따뜻한 찜질을 20분은 하고 주무세요’
‘ 컴퓨터 작업 하면서 목 허리 운동을 자주 해 주세요’
‘ 앉아있는 자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겁니다(나도 잘 못하는 바른자세를 보인다)’
‘ 물리치료하다 은근히 남는 통증 부위가 있으면 그곳에 통증 주사 드릴테니 말씀 하세요’
등으로 진료를 해 가면서 왜 낫지 않냐는 노인 분들의 반복되는 같은 질문에
‘ 통증은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가 파도처럼 (손으로 모양그리며) 이렇게 떨어지는 겁니다‘
‘ 약 먹었다고 살찌는 것 아니니 붓는 듯 싶으면 줄여서 드세요’
‘ 관절통은 감기와 같아 완치 되는 것이 아니라 아플때마다 증상 치료 하는 겁니다’
‘ 처음의 30% 정도 통증 남으면 그때부터는 운동 더 열심히 하셔야합니다.’
‘ 물리치료,약물 및 통증주사등으로 통증조절 되는 것이 80% 이상이고 수술은 5%이냅니다’
등으로 마무리하다가 간혹 억지부리면서 내 심기를 건드리는 환자들에게는
‘ 치료하러 오시지도 않고 낫지 않는다 하시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 환자에게 해로운 뼈 녹는 나쁜 주사를 의사가 주겠습니까?’
‘ 다른 병원에서 찍은 방사선 사진을 안가져오면 저도 모르니 나중에가져와서 상의해 보죠.’
‘ 말씀 하시는 환자가 와야 제가 보고 뭐라 말할 수 있죠. 다음에 같이 와 보세요’
‘ 혈압,당뇨등 만성약은 진찰 받던 병원에 가서 말씀 하세요’
등으로 대기실에서 순서를 시다리는 환자들이 밀리지 않게 속도 조절을 하면서 대화를 끊어 버린다.

요령있는 직원이면 알아서 끊고 중언부언하는 환자를 모시고 나갈텐데 착해서그런지 피곤해 하는 나를 생각안해주고 환자 위주로 살아간다.

다 천국갈 착한 직원들이다. ^_^

환자들을 보면 요령 있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보기 좋은 것인지 느끼면서

나도 요령있게 대화를 하는 훈련을 해야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어떤 분들은 정말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우아한 교양을 보이는데

어떤이들은 두서없이 주위 위성도시는 다 거쳐서 서울로 들어오는데 그나마 四大門 안까지는 들어오지도 못한다.

그럼 난 듣다가 끊고 필요한 내용만 추려내기 위해 답변을 유도한다. 도저히 다 참고 들을 수가 없다.
‘ 옛날 것 말고 최근 아픈 것이 얼마나 됐나요?’
‘ 그때 MRI 찍은 병원에서 수술을 권했나요 아니면 그냥 물리치료 하자 했나요?’
‘ 다른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몇 번이나 받아 봤나요?’
‘ 다른 병원에서 맞았다는 주사가 얼마짜리인가요?(가격에 따라 어떤 주사인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기다리는 환자를 위해 속도를 조절한다는 핑계였는데

이제는 대기 환자와 관계없이 일상 대화속에서도 내가 나쁜 버릇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집에서도 아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중언 부언 하면 딱 잘라 말한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그럼 아내는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다 짜증 내면서 가버린다.
‘아이들하고도 이야기하면 꼭 필요한 말만 하고 마무리는 같은 말로 한다.
‘ 사랑하는 것 알지? 파이팅!’
다른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면 몇 번은 듣다가 아프면서 왜 병원 안가시냐면서 대화를 끊어버린다.

사실 아픈 사람은 아픈 만큼 본인이 노력해서 병원을 가야하는데 가지도 않고 아프다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처럼 병원 턱이 낮은 나라에서 살면서 말이다.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하고 식사량을 줄여야 하듯이 아프면 병원가서 치료하도록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우리나라는 교회보다 흔한 것이 병의원이다.
하지만 이들도 삶의 분주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음을 아는데도 다정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정신과 의사들을 존경한다. 어떻게 그 답답함을 견디면서 대화를 이어 나아갈까?

하루종일 시끄러운 아이울음 속에서 살아가는 소아과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존경스럽다.

 
말 한마디가 천량 빚도 갚는다는데 모난 곳을 다스려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식으로 살다가 자칫 잘못하면 나도 모르게 벼락 맞을 것 같다.
대화는 결과못지 않게 그 과정이 중요할것이다.

최선의 해결책이 대화중에 우연히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지 이성적인 진지한 대화 후의 결론인 경우는 오히려 적을 것이다.
1분씩 상대방에게 귀를 더 기울이는 버릇을 늘려가자.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노력하자.
그러다 도저히 도저히 도저히 도~저히 안될 경우는 매정하게 끊어 버리자.
혈압 높은 나도 살아야 하니까.

20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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