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SNA
Social Network System(사회 연결망 시스템) 과 Social Network Analysis (사회 연결망 분석) 의 약자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문명이자 분석하는 학문이다.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인류 문명의 결과이고 그것을 학문화하려는 노력의 첫 걸음이다.
1800년대 뉴욕의 뉴스가 시카고까지 전달 되는대는 16일이 걸렸다. 말이 달리는 속도이다.
1900년 뉴욕에서 시카고가 일일 생활권이되면서 하루면 전달 된다. 기차가 가는 속도이다.
지금은 뉴욕의 뉴스거리를 일반 시민이 아무 부담없이 지구 반대편으로 전달하는데 수초면 끝이다.
뉴욕 거리의 일상 헤프닝을 바로 반대편 동남아시아의 안방에서 누워서 저절로 알 수 있다.
오히려 바로 이웃과의 인간관계 거리보다 물리적 거리가 훨씬더 가까워졌다.
SNS의 발달로 문명의 확대와 소식의 전달이 보다 빠르고, 넓고, 싸게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 과정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사회적 관계와 인맥 유지의 중요성이다.
Robert D. Putnam 교수의 <Bowling Alone>의 책에서 국가내 구성원들의 신뢰 변화에 대해서 다루었다.
TV 발달 이전에는 실 생활에서의 사회 관계가 유지되고 신뢰가 기반이 되어 사회,경제,정치등의 공유가 가능했는데
TV 출현 이후에는 사회 관계 (교제)가 멀어지고 신뢰기반이 무너져 간다는것이다. 즉 선진국일수록 사회, 정치에 대해 무관심 해지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국소적인 사항만 관심갖게 되어가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진다는 것이다.
SNS가 발달한 현대에는 더더욱 이런 현상이 가속화 되어갈 것을 뻔하다.
옆집에서 여자가 토막 살인 당하기 전에 반항하면서 비명을 지르는데도 이웃에서는 부부싸움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아무도 신고도 안하고 신경 안썼다는 기사가 어제 나온 것이 현재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소위 cool 하게 ‘나 당신에게 아쉬운 소리 안할 테니 당신도 내게 하지말라'는 主義로 사는 우아한(?) 사람들투성이다.
현대인의 병인 성인병이 많아지는 것은 운동을 하는 양보다 섭취하는 양이 많아서 잉여 영양분이 체내에 쌓이기 때문이다.
즉 운동을 안해서라기 보다 과잉 공급이 원인이다.
사회 관계도 문명의 발달로 과잉 잉여 관계가 넘치면서도 군중속의 고독을 호소하며 우울증과 자살율이 증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실속없는 관계가 넘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사람 즉 structure hole이 많은 사람 ( 발이 넓은 사람)이 성공한다는 논문 결과가
있는 것을 보면 개개인이 어떻게 소화할 수 있느냐의 차이지 단순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대인관계를 좁고 깊게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얕지만 넓게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마 후자일 것 같은데 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깊어지는 관계는 노력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닌 운명이 있다는 것이 50줄까지 살아온 나의 결론이다.
결국 유지 안될 운명은 절친한 교우 관계도 그저 지인수준의 사회적 유대관계로 변화되기 쉽다.
그것을 억지 노력으로 포장할 가치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문명이 발달 할수록 소원해지는 사회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SNS등의 혜택을 박탈하고 준準원시 상태로 돌아가 다시금 인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재再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야하는가?
당연히 지구 종말 수준의 재앙이 있지 않는한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분명히 중요하다.
시대따라 조금씩 첨삭될 뿐이지 세대간의 교류 단절이 고착화 될 정도로 기성 세대가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
어떤 인간의 갑작스런 결과란 없다. 그 사회 관계의 질적 수준이 내 삶을 서서히 결정 짓는다고 본다.
우리가 아는 유관순열사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천안에서 감리교 개신교도로서 흥호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운동을 하던 아버지 유중권의 딸이며 민족운동하던 오빠 유관옥의 동생이자 유예도의 사촌이다.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 학당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신문물을 배우며 개화된 여성으로 성장하였다. 3.1 운동 참가 당시 부모님이 눈앞에서 일경에게 살해 당하고 오빠 역시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온갖 고문에도 독립을 외치다가 1920년 가을 18세 나이로 옥사한다. 이런 가풍속에서 그만한 수준의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래서 온가족에게 전부 ‘건국 무궁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것이다.
그렇듯 아직도 사회 관계의 수준은 그 구성원을 그만큼 고급화(?) 시키는 값진 기운이 있다.
以夷制以이이제이의 현명한 처세술도 모두 관계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개인주의가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 문명이 발달 된 것이 큰 걸림돌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의도적인 사회 관계를 유지하여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가야한다.
이런 관계 자원이 성숙되어야 사회 자본이 풍요로와진다. 이것을 현명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이다.
인간 관계, 사회 관계의 진실성을 폄하시키지 말고 잉여수준의 풍성함속에서도
작은 숨은 보석을 하나씩 찾아가는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한 요즘이다.
세대간의 상식 단절이 오지 않도록 기성 세대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관계가 절단된 사회에서는 독버섯만이 잡초처럼 자랄 뿐이다.
사회 관계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젊은이들인 것 뿐 그들이 잘못된 성장을하는것이 아니니 기성 세대가 꾸준히 보살펴야한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고 내 가족을 위한 일이기때문이다.
참고 ; 서울대 한신갑 교수님 강의록
네이버 ; 유관순
이화학당의 유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