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무상 이라는 말은 단순한 하소연의 뜻이 아니라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 는 심오한 진리라 한다.
어렸을땐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인것들.
에어컨바람, 뷔페음식, 공포영화, 비행기 타기, 대도시 밤새놀기...
어렸을땐 싫었는데 지금은 좋은 것들.
잡곡밥,걷기, 명상, 혼자 있기, 모차르트 운동, 차...
<혜빈스님의 ‘머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 중에서>
세상은 소리없이 변하고 사람도 모두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변하고 있다.
과거 대학시절 야구 하면서 야구복으로 갈아입는데 넓은 운동장에서 하면 되는것을 창피하다고 건물이나 나무 그늘로 한참 찾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던 시절이다. 운동장에서 갈아입어도 볼 사람도 없거니와 만약 누가 멀리서 본다해도 젊은 신체는 사실 아름다운데 말이다. 그 당시에는 참피한줄도 모르고 그곳에서 갈아입는 동급생 형이 이상했었다.
지금이면 전혀 망설임 없이 아저씨 스타일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않고 갈아입겠지.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어제 헬스 장에서 운동하는 데 50대 후반 아주머니들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자신들은 땀나면 속옷이 보이니 헬스복을 2벌씩 입는다 한다. 솔직히 죄송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몸을 쳐다볼 사람이 하나도 없을테니 굳이 그럴 것 없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쭉쭉 빵빵이면 몰라도...하긴 그들도 한 때는 젊은 사람들 이었다.
나 역시 햇볕 강한 맑은 날의 큰 폭포보다는 안개낀 개천가의 운치가 좋고 헬스장의 근력 운동 시설보다는 스트레칭등 관절 운동 시설을 선호하게 되었다. 다양하고 확실한 장거리 여행보다 속깊고 아기자기한 단거리 여행이 좋고 블록 버스터 영화 보다는 조용하고 여운이 남는 저예산 영화가 좋다.
세월이 흘러가며 신체에 훈장을 남기듯이 사고의 수준도 한없이 변해간다. 동일한 사실에 대한 해석이 계속 달라지니 영원 불변한 절대적인 진리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된다.
과거 이혼한 사람들을 사회적 낙오자로 여겨질때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부부간의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들이라 폄하될 때였다. 나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요즘은 각자의 삶을 위해 후속적인 수 많은 난관들을(사회적 편견, 자녀들의 불행, 법적 투쟁등) 극복할 수 있는 그 용기에 개인적으로 찬사를 보낸다. 나이들어 희미하게 자욱만 남아있을 ‘사랑’이라는 한때의 허상을 그 나이에도 쫓을 수 있는 그 정열이 대단하다.
정신의학적으로도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 하는 적대적 관계인 부부의 영향보다는 오히려 서로 헤어져 편안하게 편모 편부 아래서 자녀들을 키우는 것이 더 좋은 것으로 되어있다.
물론 서로의 신의를 잃게 된다면 이혼 할 수도 있겠지만 믿음이란 것이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이라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도 없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와 같은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일 뿐이다. 아무튼 세상의 평가는 많이 긍정적이 되어 요즘은 이혼한 여인이 총각과 결혼도 많이 한다 하며 그 능력에 많은 이들이 내심 찬사를 보낸다.
노동조합운동, 학생정치운동, 정치투명과정, 종교의 성숙과정 국민 납세 과정 등 모든 사건 사고들은 선진국을 답습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같아 시기만 다를 뿐 다 순차적으로 동일하게 거쳐가는 과정일 뿐이니 누가 누구를 천하게 생각할 것도 동경할 것도 없다.
항상 일본을 따라가는 우리나라인데 일본에서 유행한지 한참 되고 있는 황혼 이혼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늘어나고 있다 한다.
그동안 자식 때문에 참았던 자신들의 삶을 위해 남편을 버리고 혼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보겠다는 이기적인 심리다. 남자들이 약육강식의 사회활동속에서 일어나는 자괴감을 집으로 가져와서 해소한다면 가족들이 보듬어 줘야할 텐데 과연 남자들만의 잘못일까?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수준 낮은 남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무너지는 남자의 위상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머중 하나가 은퇴한 장년 남성을 회화 하는 ‘영식이 삼식이 씨리즈’다. 집에서 밥을 먹는 남편을 몰상식하게 표현하는 이것은 아마 미숙한 여성 상위 시대의 한심한 부작용으로 생각된다.
남편이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할까? 이건 분명 남자들의 잘못도 있지만 사회전반적으로 어설픈 여성 상위의 변질된 풍속이며 시청율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메스컴의 발악으로 인한 인간성의 변질이다.
나는 늙어 가족에게 기대기만 하는 삶이 된다면 깨끗이 정리할 것이다. 사회에서 보상 받아야할 권리 이상으로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하지만 어설픈 선진화 흉내를 내면서 나의 땀내 나는 과거를 무시하고 내 존재를 폄하하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힘 닿는한 대항할 것이다. 안하무인격으로 건방진 것은 못참는다. 이것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할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질 것이며 결과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으로 기꺼히 받아들일 것이다.
어짜피 인생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고 어짜피 해도 안되는 일부 세상사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오늘도 눈뜨고 내 발로 걷고있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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