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로 살아가는 세월이 내게도 10여년은 있었다.
수많은 수술과 땀 그리고 그 이후의 많은 일들(수술후의 감동과 감사 , 부작용, 의료 소송과 구치소 수감등)을 담대히 겪으면서
내 자신이 외과 의사로서 담금질 되어왔다.
수술전 회진하면서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여러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혹시 모를 의료사고도 감안해서 의학적인 설명을 분명히 그것도 자신있게 해준다.
두 손을 소독제로 깔끔하게 씻고 간호사들이 입혀주는 수술 가운을 입고 수술대 옆에 선다. 긴장하는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마취가 되면
수술 부위를 째서 뼈를 개방시킨다. 정형외과적 특징상 수많은 쇠톱 드릴 등의 시끄러운 소음 과정을 거쳐서 환자를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취한다. 수술 후 방사선 사진으로 결과를 확인하고 (정형외과는 수술후 확실하게 결과가 나오는데 이것이 큰 매력이다.) 마무리 과정을 매듭짓는다. 마취를 무사히 깨고 나서 환자를 회복실로 옯기고 수술 잘되었으니 걱정말라고 환자에게 이야기하면 대부분 수고하셨다고 답을 힘겹게 한다.
피묻은 수술복을 입은채 밖에서 안타깝게 대기하는 보호자들에게 수술이 잘되었다고 말해주는 것이 별것 아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생각하면 참 멋지게 살았던 세월이었다.
땀에 젖은채 보호자를 만나 안심시키고 내 방으로 들어가 음악 들으면서 커피 마시다보면 다음 수술 준비 되었다고 연락이 온다.
그럼 또 하나의 작품을 위해 마스크하고 손을 씻는다. 이런 삶의 연속이 얼마나 멋진 삶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저 무념무상의 반복일뿐이었다.
이제는 내 나이 50에서 하나 빠진다. 하루종일 진료실에 앉아서 130여명의 환자를 보면 오후에는 진이 빠져 입이 마른다.
10년전만 해도 매일 평균 180여명 보면서 새벽이나 밤에 수술까지 하고도 그 다음날 거뜬 했는데 이젠 낮잠 20분만 안자도 오후 5시가 되면 표정이 굳어진다. 아버지께서는 초심을 잃지 말고 열시히 살아라 하시지만 사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사명감으로 갓 의사 되었을 때나
의료 경영인으로서 사업을 크게 확장해 보자는 꿈으로 갓 개업했을 청춘의 기분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세월이 가르쳐준다.
하지만 나름의 연륜으로 아픈 이들을 위한 치료 방법에는 많은 발전이 있다고 자부한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변화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갓 임관한 소위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않고 전쟁에서 많이 전사 하듯이 영관급 장교가 그렇게 무모하다면 전쟁에서는 필패일 것이다.
영관급 장교나 장군은 그에 맞게 행동해야하는 것이다. 그들은 돌격대가 아니라 지휘관이다.
나는 지금 그럼 대령쯤 되려나? 아니면 준장이 될 수도 있을까? 혹시 많이 봐줘서 사단장 정도까지 욕심 내볼 수 있을까?
아니 그냥 준장 정도가 현재의 내가 아닐까 싶다.
버겁게 무리하지 말고 어설픈 행동을 자제하면서 말을 삼가고 현명한 사색에 가능한 빠져서 시기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내 나이에 내가 해야할 일 일것 같다.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즐겨야한다고 재 다짐하면서...
나도 사실 그렇게 많이 남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20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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