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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문명의 편리함에 젖어서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 한다. 무엇이든지 수요가 있으면 생각을 하게 되어있다.
물론 스티브 잡과 같은 천재는 ‘ 소비자는 우리가 만들어 주기까지 무엇이 필요한 지 모른다’ 고 자신하지만

대부분은 많은 수요의 욕구가 쌓이면 공급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 상품이다.

이런 상품이 단순히 인간을 편하게 해준다는 상황을 넘어 잉여 시간을 제공 함으로서

보다 고차원적인 삶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점에 높은 가치가 있다.
승강기 자동차 냉장고 비행기 전기 등 많지만 단적인 예가 바로 세탁기 이다.
세상의 많은 주부들의 일과중 가장 많은 범위를 차지하던 것이 가사일중 세탁행위였다. 물을 길러오는 것뿐 아니라 빨고 널고 하는 노동은

시간과 체력을 고갈 시켜 먼 미래의 희망보다는 눈앞의 피곤을 더 생각하게 한다.

그들을 위한 세탁기의 발명은 수십년간 여러 단계를 거쳐 한 나라의 여자 대통령까지 나오는 상황까지 발전하게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고급 관료나 대기업 간부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라 본다.

내가 정형외과 수련중인 1990년초에는 치료의 기본이 석고붕대였다. 요즘은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녹말 가루를 흡수시킨 무명천 두루마리에

황상 칼슘을 흡착시킨 것이다. 이것이 물과 닿으면 반응을 거쳐서 ( CaSO4+2H2O -> CaSO4.s(HsO)) 단단해진다.

이 과정에 발생되는 석고 가루 먼지를 마시면서 수도 없이 치료 부목을 만들면서 살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빨리 일을 마치자는 일념으로 계속 계속 만들면서 살았다. 내 폐속에도 아마 석고 가루가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당시 유행한 ‘사랑과 영혼’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하지만 요즘은 현대화된 플라스틱 부목을 쓴다. 그것도 환자 취향따라 형형 색색이다.
상자에 있는 롤을 풀어서 그냥 길이재고 물에 적시고 몸에 대고 감으면 끝이다.
부목 만드느라 가루 먼지 날것도 시간 허비할 것도 허리 아플 것도 없다.
지금의 정형외과 수련의 들은 과거 책에나 나오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석고 두루마리도 1970년대는 재벌들이나 사용하는 아주 비싼 재료여서 일반인들은 사용할 엄두도 못냈다니 참 격세지감이다.

요즘 진료실 내 책상에는 컴퓨터만 있다.
과거처럼 진료 차트가 쌓여 있고 필기도구가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책상이 아니다.

전자 차트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 손가락의 수십년된 굳은살은 1달도 안돼 사라지고 이제는 환자들과 대화 하면서 컴퓨터 자판을 안보고 치는 수준이 되니 글씨 쓰는 것 보다 훨씬 빠르다.
방사선 사진도 환자가 찍으면 바로 컴퓨터 화면에 뜨는 DR 시스템이다.

많은 개업가에서 쓰는 CR도 아닌 비싼 이것을 쓰는 것은 단순히 내가 편해서다.

사실 최대한 빨리 진행하면 환자가 방사선 테이블에서 사진 찍고 내려오기도 전에 난 그 환자의 방사선 사진을 다 자세히 보고도 남는 시간이 생긴다. 무엇보다 과거 필름을 1초도 안되는 시간에 찾아 같이 상담 할 수 있어서 환자에게도 좋다. 과거 같으면 방사선 필름 창고에 들어가서 한참 찾아 봉투 뭉치를 가져오면 또 거기서 날짜를 보면서 찾아야 한다.

법률상 5년 보관해야하니 불필요한공간도 차지하고 무엇보가 서로가 시간을 허비하게 되니 거의 찾을일이 별로 없다.
지금 수련의들은 필름을 찾으려 고생안하고 단순히 컴퓨터를 치면 수년전 것도 바로바로 나온다니 필름 한번 다른 환자와 섞어서 그것 찾느라 밤을 샌 수많은 나날 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답답하다.

(하긴 그 필름 찾는 다는 핑계로 창고 구석에서 잠깐이나마 잠을 잘 수 있었던 고마움이 있긴 했다.)

사람은 한번 편해지면 그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편리함은 또한 무서운 것이다.
잉여 시간이 많아져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가면 좋겠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유언비어도 보리 뿌리가 거두어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정도 삶을 위한 긴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지면 결국 병에 물들어간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너무나 갖은 것이 많은 정상급 연예인이나 재벌이 결국 원초적인 마약이나 도박에 빠지는 것도 부귀 영화를 누리던 로마가 망해가는 것도 다 같은 이치다.
삶을 위한 긴장감이 없으니 본능적인 원초적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이다.

비어지는 만큼 채워 지는 법인데 비워지질 않으니 고인물이 썼는 것이다.  한가지가 필요할 때는 한가지만 있어야지 여분의 하나가 더 생기면 있는것의 감사함 마져 사라지니 귀함의 가치가 덧없어진다고 법정 스님은 말씀 하셨다.


너무나 편해지는 요즘 세상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거듭 거듭 마음에 되새겨야 하리라.
아무리 얌전한 황소도 항상 고삐를 잘 잡고 가야지 잘못하면 남의 귀한 논을 망치기 쉽다.
항상 내 생각의 고삐를 진지하게 잡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과거의 그늘을 잊지 말고 미래의 희망도 잘 가꾸면서 오늘의 따스함을 즐기며 살아가리라.
201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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