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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생애 첫 마라톤 완주

동아 마라톤은 올해로 83회인 전통있는 행사다. 다른 행사와는 다르게 동아 마라톤은 서울 시내를 두루 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실 42.195km를 달린다는게 그 거리의 양에 일단 주눅이 들어 해보고자 하는 시도 조차 못해봤다.
그런데 자꾸 마라톤이나 등산을 하는 마니아 환자들이 내게와서 진찰 받으면서 내 잠자던 욕망을 일깨워 줬다.

사실 난 단거리는 약했지만 과거부터 장거리에는 강했고 뛰는 사람의 그 참맛을 잘 안다.

중학교 시절 밤마다 여의도 윤중제를 뛰었고 집앞 공원둘레도 자주 뛰었으니 매일 3km 정도는 될것이다.

그 당시에는 밤 10시에 항상 뛰고 싶었고 뛰면서 사색하는 그 안정된 마음의 상태가 참 좋았다.

거의 참선에 가까운 마음의 수련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 당시의 내 학교 성적은 평생 최고의 수준이였다.

뛸때의 고통을 잘 넘어서면 그 뒤는 마음이 안정되고 고통이 없는 편안한 과정에 진입한다.

그 순간을 기대하면서 고통의 과정을 이겨 나가는 것이 장거리 달리기의 매력이다.

물론 그런상황은 요령과 체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뛰는 내내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작년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에서 30km 뛰고 맛을 본후 이번에 동아 마라톤 대회에서 42.195km를 완주를 했다.
대회 준비도 별로 안하고 체중 조절도 잘 안돼서 처음엔 서울 시내의 차도를 뛰어본다는 의미로 참가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뛰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욕심이 생기고 대회 당일에는 아예 비상금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물품 보관소에 맡겼다.

중간에 퍼지면 집에갈 차비도 없이 배수진을 쳐놓고 달리기로 했다.

30km 정도까지만 갈 수 있으면 무조건 거어서라도 완주할 생각이었다.

 

처음 시작은 순조로왔다. 우연히 옆에 같은 속도로 뛰는 젊은 아가씨와의 인연도 재미있었고 덕분에 폼좀 잡고 뛰었다.

그런데 이게 실수였다.

처음 10km 까지는 그럭 저럭 괜찮았는데 그 이후 양측 무릎 외측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괜히 폼잡으면서 무릎 운동을 과하게 해서 계획보다 통증이 빨리 발생했다.

조선일보때도 그곳이 아파 힘들었는데 괜히 아가씨 옆에서 똥폼 잡다가 차질이 생겼다. 결국 보폭을 줄이고 무릎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면서 노인 자세로 뛸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통증은 다시 사라지면서 20km를 무사히 통과했다.

그 아가씨는 저 멀리 가버려 보이지도 않는다. 춘천에서 뛸 때는 경주코스에서 5km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음료수와 바나나 초코파이

등이 신기하고 맛있어서 부담없이 주는대로 많이 먹었었는데 이번에는 완주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조심했다.


광화문 거리의 과거 추억의 국제극장 자리를 지나 을지로와 청계천변을 왕복하고 종로를 거쳐 동대문 등을 지나면서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여유있게 뛰었다. 많은 건물들이 바뀌고 변했지만 그 위치에서의 추억은 그대로 내 마음에 있었다.

드디어 30km를 넘어서면서 체력이 고갈되어 다리가 말을 잘 안듣기 시작했다.

이젠 사색이고 뭐고 바로 앞만 보고 간신히 뛴다. 저 멀리의 많은 군중들을 보면 기가차서 그냥 눈앞만 보고 뛰어갔다.

간간히 길가에 표시되어있는 거리표시를 보면 왜 이리 1km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지...
40km를 넘어서면서는 오직 5시간 내에 들어가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었다.
흔드는 양측 팔의 노력에도 다리가 잘 따라오질 않았다.

그리고 이 시간에 결승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내 가족을 위해서 멋지게 들어가기 위해 체력 안배를 신중하게 하면서 뛰었다.

드디어 골인지점... 그런데 아무리 둘어봐도 가족들이 안보인다. 그냥 맥없이 골인!!
물품 보관서에서 물건 찾고 핸폰 해보니 이제 도착했다한다. 아이들에게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손발이 서로 안맞아서원...
아무튼 난 해냈다. 참 오랜만에 내가 일한번 저질렀다.
많이 할 것 없이 딱 5번만 완주해보자. 그리곤 다른 것을 또 해보자.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시도를 해 보자.
내 버킷 리스트 하나 끝이다.
2012.3.19

마라톤의 역사
기원전 490년 아테네 북동쪽에 있는 마라톤 광야에서 그리스의 밀티아데스가 침략해온 페르시아군을 격파했을 때 그리스군의 병사가 그리스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약 40km를 달려 “우리는 이겼노라”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리고 그 자리에 쓰러져 숨졌다고 한다. 이 같은 고사에서 유래되어 1896년 근대올림픽 제1회 아테네대회부터 육상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마라톤에서 아테네의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코스를 달렸다. 이 때의 거리는 후일 실측해 보니 36.75km로 밝혀졌으나, 제7회 올림픽까지는 대회 개최지의 여건에 따라 통일된 거리가 아닌 40km 전후를 달렸다.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대회를 앞두고 마라톤경기의 거리를 일정하게 통일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대회 때 윈저궁전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거리 42.195km가 마라톤의 정식 거리로 채택되었다.

[출처] 마라톤 [marathon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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