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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사소한 대 사건

사소한 대 사건

여러 직군 중 사람을 대하는 써비스 직종은 감정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응급실의 의료인 폭행처럼 만연해 있지는 않지만 그런 문제는 작은 진찰실에서도 흔하게 있는 일이다. 물론 환자와 의료인 간의 믿음으로 (관계 Rapport 형성) 좋은 결과가 될 수 도 있지만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의료인들은 이런 일 들로 일희일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직업상의 업보이고 환자들 역시 같은 이유로 병원을 가능한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대인관계의 구차한 일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21세기답게 IT 업종에 종사하면 된다지만 그곳에서도 조직 상하간의 대인관계는 피할 수 없다. 결국 사회 구성원으로 사는 이상 각자의 지혜로 인간관계를 잘 해결해 나아가는 방법 뿐 이다.


평소 밝은 표정으로 내원 하시던 애기 엄마가 어두운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이럴 것 같아서 그날 안하려 했는데...” 말꼬리 흐리면서도

구겨진 미간으로 뱉어내는 말 속에는 비수가 있어 뭔가 일이 터졌다고 직감 할 수 있었다. “ 우리 애 이마 어떻게 할 거에요?”
다짜고짜 옆에서 긴장하면서 따라온 여자아이 이마를 내게 보여준다. 보통 아이라면 병원 문턱만 들어서도 우는데 내 앞에서도 자제력을 발휘하고 눈가에 물기만 보인 채 긴장하고 서 있다. 하얗고 예쁜 이마의 정 중앙에 최근 것으로 보이는 작은 상처가 보인다. 부모의 마음이 참 아플

만한 상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실 조각이 있다. 문신 한 것처럼 파랑색 실 조각이 하얀 피부 속으로 보였다.

<아뿔싸>

개인적인 일로 며칠 전 대진의사를 초빙했던 날에 일이 터져버렸다. 다른 병원에서 한 바늘 봉합했는데 실밥만 뽑는 것이니 평소 다니던 가까운 곳에서 하려고 엄마가 아이들 데리고 온 것이었다. 본인이 잘못 결정해서 아이가 고생한다면서 내게 항의 했다. 아무리 대진의사 때문이라도

모든 것은 원장인 내 책임이니 어쩔 수 없다. 사실 나일론은 체내에 남아있어도 무해한 것이지만 아이의 이마 정중앙에 나일론 실 조각이 있다면 그건 다른 문제다. 부모입장에서 얼마든지 화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순간 10여 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식은땀이 흘렀다. 종합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는 아이 손목 골절을 보호자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수술 없이 잘 치료해서 몇 주일 후 치료의 마지막 순간이 왔다. 그때까지는 보호자들과 관계가 아주 좋았다. 내가 웃으면서 석고를 제거해주고 남아있는 석고 안의 솜을 잘라주도록 간호사에게 인계하고 밀리는 외래 환자를 보러 갔는데 그 간호사가 솜을 자르면서 가위로 남자아이 피부에 1cm의 열상을 만들어 버렸다. 석고 속의 피부는 약한데 끝이 둥근 가위로 밀어버린 것이다. 내가 사과하고 봉합 치료는 했으나 그 뒤로 아빠는 찾아와서 위로금을 요구하였고 결국 치료비의 수십 배나 되는 돈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아픈 마음은 이해하지만 수술 없이 치료해준 상황을

전혀 고려 안 해주는 씁쓸한 경험이었다. 그 수주일 동안 내 마음은 얼마나 많이 긴장하고 고민했었는데 보호자들이 알 턱이 없다. 20여 년 전에 는 석고를 따는데 아이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발등에 상처가 났었다. 하지 골절 다 치료되어 기쁜 마음으로 석고를 제거하는데 일이 생겼다. 1주일 정도 치료하면 될 열상을 사과해도 아빠는 내 월급의 10배 이상의 보상금으로 누차 요구하다 결국 재판까지 갔던 일도 떠올랐다. 항상 아빠가 문제다. 그때는 검찰청 업무 착오로 경찰차에 실려서 구치소에 수갑 차고 들어가 만 하루 동안 잡혀있기까지 했었다. (그때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검사가 한마디 할 뿐이었다. “식업 했겠네?” )

사실 실 조각이 피부에 남는 일은 큰 수술 후 생길 수 있는 일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소한 것일수록 뜻밖의 상항이 생긴다면 오히려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니 말이다. 결국 화난 엄마를 안정시키고 아이를 테이블에 눕힌 후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이제야 상황을 깨달은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를 잠시 치료실 밖으로 나가시게 하려니 아이는 발작 수준으로 울어 그냥 옆에서 손 잡아주게 했다. 불을 비추고 이마를 보니 약 5mm 정도 되는 파란 실이 피부 속에 있다. 그런데 하필 이마의 정 중앙이다. 노인 이마면 보이지도 않을 텐데 하얀 어린이 피부라서 너무 잘 보인다. 혈압이 오르면서 뒷골이 땅긴다. 바늘로 찔러 실을 걸어서 뽑으려 해도 6-0의 가는 나일론이니 중간이 끊길 것 같아 할 수가 없다. 일단 끝의 일부를 바늘로 따서 보이는 실의 끝을 잡아당겨 보려하는데 엄마가 항의 한다.
“ 또 이마에 상처 내요!”

<그럼 이마에 상처 안내고 어떻게 실을 뽑아요!>라고 말을 쏴주고 싶었지만 머리로 따질 뿐 그저 묵묵히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살짝 바늘로 상처 낸 곳에 실 끝이 보였다. 하늘에 감사하면서 모스키토로 잡으려는데 너무 작고 가늘어서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에도 실패의 연속이다. 결국 우는 아이를 달래고 상처에 작고 예쁜 만화 밴드를 얌전히 붙였다. 치료실에 잠시 진한 정막이 흘렀다.
“ 엄마, 괜히 뽑으려다 상처 더 생기니 그냥 둡시다. 곧 안보일겁니다. 약 한달 뒤에도 보이면 그때 합시다.” 지금의 상황을 그냥 넘기고 싶은 생각 뿐 이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엄마도 우는 아이 달래면서 치료실을 나갔다. 진료실에 돌아와서 땀에 젖은 이마를 닦는데 문 너머로 엄마의 화난 푸념이 들리더니 현관문이 큰소리로 닫히고 다시 더 무거운 정막이 흘렀다.

<오랜만에 또 일하나 터졌군. 내일이면 아빠도 오시겠네. >


대진 의사에게 전화로 따질 수도 당시에 곁에서 도와줬던 직원에게 화낼 수도 없다. 결국 내 얼굴에 참 뱉기니 말이다. 모든 것을 다 떠안고 원장인 내가 감당해야한다. 이미 터진 일에 대한 가정은 필요 없다. 오직 앞으로의 해결 방법만 생각하자.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성형외과 전공 친구에게 전화해서 미세수술 용 기구를 빌렸다. 집에서도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이것으로 실 끝이 잡히지 않으면 이마에 또 상처를 내야 뽑아낼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

<화내는 엄마를 어떻게 달래지? 아마 아빠까지 같이 오겠지? 치료하는 것이야 하겠지만 결국 보호자에게 위로금을 요구하지 않을까?>
<그냥 성형외과에 보내서 해결하게 하고 보상금으로 해결할까? 그래야 나중에 흉터 생겨도 말이 없을 것 같은데... >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밤잠을 설쳤다.

다음날 병원에 출근해서 엄마에게 성형외과용 기구를 준비 했으니 오전에 다시 오라고 전화를 했다. 아이 엄마는 “또 아이를 울려야하냐”

따지면서도 “우리 아이 때문에 고생하시네요” 라는 멘트를 날리고 전화는 끊었다. 갑자기 마음이 안정 되면서 감사함이 느껴졌다.
< 그래 착한 아이를 안 아프게 빨리 잘 치료해보자. 안되면 그건 그 다음 일이다.>
보호자는 마음이 급해서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왔다. 아이도 긴장된 표정이었다. 준비한 인형을 보여주면서 울지 않고 잘 치료 받으면

주겠다고 약속했다. 표정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지만 여전히 울기직전의 얼굴이다. 치료실 침대에 눕히고 엄마를 밖으로 보내려니 바로 크게

운다. 할 수 없이 곁에서 손잡고 있게 했다. 의사가 치료하는데 보호자가 곁에서 보고 있으면 불편한데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어제 붙여 놓은 밴드를 뗐다. 어제 상처 낸 곳에서 실 끝이 보였으니 오늘 그 곳에 생겼을 딱지를 떼면 바로 실밥 끝자락이 보일 것이라는 것이 어제 밤새 생각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밴드를 떼어내고 보니 딱지도 없이 상처는 너무 잘 아물어서 실 끝은 오히려 더 안 보였다. 갑자기 머리가 띵~ 해졌다. 상처부위를 중심으로 영화 속의 화면처럼 360도 회전 하는 것 같았다.

 <상처를 또 내면 엄마가 예민해질 것인데 안보이지만 어제 했던 곳으로 다시 할까?>

<그나마 실 끝이 약간 보이는 반대편으로 해볼까?>
일단 숨을 크게 고르고 다른 곳으로 상처를 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춘다.

<제발 나를 자극하지 말고 조용히 좀 계시라...> 마음속으로 바란다.
상처를 줄이기 위해 바늘로 상처를 냈다. 당연히 피는 났고 결국 아이는 다시 크게 우는데 실 끝이 안 보인다. 그렇다고 더 상처를 낼 수도 없으니 성형외과에서 가져온 포셉을 가지고 감으로 짚어본다. 아무리 예리한 기구를 이용해도 한두 번 했는데 안 잡힌다. 다시 피나는 상처를 거즈로 누르고 지혈시키면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하늘은 속절없이 화창한데 내 마음은 장마철처럼 우중충하다. 큰 수술도 아닌 이런 일에 긴장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뿐이었다.

 “ 아이고 착하네. 이제 마지막이야. 잘 치료 받으면 지금 갖고 있는 인형 줄게. 알았지?” 일단 눈앞의 인형으로 달래고 다시 시도한다. 무중력 상태의 신체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는 무념무상의 상태였다. 그냥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똑같이 다시 시도해봤다. 그런데 그 순간 순박한 시골 처녀의 미소처럼 수줍게 살짝 실 끝이 보이다가 다시 핏방울에 묻혔다.
<저놈을 기필코 잡아야한다.>
숨을 멈추고 예리한 포셒으로 실 끝이 묻혀버린 핏방울을 잡고 당긴다. 기적처럼 안보이던 작은 실 조각이 예리한 기구 끝에 딸려 핏방울을 뚫고 나왔다. 전혀 잡혔다는 느낌도 없는 작고 가는 실 조각이었다.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긴장하는 직원들 앞에서 태연한척 하며 엄마 눈앞으로 당당하게 조각을 확인 시킨 후 이마의 상처를 다시 봤다. 깨끗했다.
< 살았다 >
엄마의 표정에 보이는 불만은 이제 상관없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갔지만 약속대로 인형을 선물로 주고 보냈다. 저렇게 인내심을 갖고 의료진을 대해준 환자 보호자에게는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데 이번은 다행히 잘 해결되어 기쁠 뿐이었다. 차분한 교양을 보여준 보호자에게 마음으로 거듭 감사했다. 혹시 내일 아빠가 위로금을 요구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는데 다음날 아침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경황이 없어서 인사 못했어요. 수고 하셨어요”



사소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일이 있는 날이면 큰 수술 후 만큼 기력이 빠진다. 나이를 먹어 갈 수 록 더욱 더 그런 것 같다. 일선 개업가의 일이 보통 그렇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수술을 할 때는 문제도 안 될 사소한 일들이 수술치료가 불필요한 경우에는 오히려 사건화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날 밤에 어머니와 저녁 식사하면서 치료한 환자 문제가 있어서 조금 마음 고생했다고 하니 바로 망설임 없이 한마디 하신다. “ 너는 수술도 안하면서 무슨 문제가 생겨?”
타인의 일은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자신을 무조건 이해해주길 바랄 것 없이 그냥 웃어넘기는 수밖에 없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그래야 좋다. 물론 타인도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 자신의 한정된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주관적 상식만을 기준으로 살아가니 말이다. 세상은 원래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거다.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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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미수필 공모 출품작

무엇보다 내가 나이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긴것 같아 좋다. 수준을 떠나서 그냥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 이 글이 작은 상이라도 타게 되면 내가 한턱 크게 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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