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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삶의 선택

살아오면서 내가 선택을 해야할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일본의사와 슈바이쳐전기를 보고( 누구나 그렇듯이) 의사를 꿈꾸고 망설임없이 이과를 선택하고
수준에 맞는 의대를 들어가 졸업하고 지금 의사로 산다.
고교 졸업 20주년 행사때 타임캡슐을 열어보니 과거 고3때 쓴 미래의 자화상글에 내가 쓴 그 수준의 그 상태로
건강하게 살아있었으니 난 행운아다.
유명한 의사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술해준다는 항목은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의사니 봐 줄 수 있다 친다. 인생은 원래 뻥이니까.

뛰어난 학력고사 점수와 엄청난 지능수준으로도 선택을 잘못해서 인생이 풀리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지금까지는 건강을 치켜준 것, 자녀를 낳을 수 있게 해준 것, 또한 부모님 다 건강하게 지금도 계신 것 등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신 하늘에 깊이 감사한다.
정형외과는 내가 의과대학 산악부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감사하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미흡한 나를 정형외과 의사로 키워주신 김형석,홍기도, 하성식스승님께는 항상 감사한다.)
그당시 내가 수련 받은 서울 위생병원은 페니실린이 국내 처음 들어온 미국 선교 병원이라는 과거 영광과 함께
이승만 박사 별장이 아직도 있었고 레지던트 들에게 각자 큰방 하나씩 줄 수 있는 큰 대지의 병원이었다.
내가 들어가기 5년전 까지만 해도 복도에 항상 과일이 쌓여있어 의사들이 지나가면서 먹었었다는데 완전 서양식 병원이었다.
거기에 고대의대산악부 출신들이 정형외과 의국을 잘 리드하고 있어 내가 학생시절 그곳 선배들에게 수없이
수금하러 다니면서 술 얻어멌었던 그 병원에서 정형외과를 배웠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50대 선배분들에게 ‘형’칭호를 쓰면서 산악부와 병원 생활의 추억을 이야기 나누면 참 기쁘다.
존경하는 서울 상성병원의 박윤수 교수님께 사사 받고 좋다는 병원들에서 내공을 쌓다가 막판에 나의 멘토이신 김인권 원장님께서
헌신하시는 애양병원에서 피크를 달려 일반 외상과 인공관절수술을 수없이 했고 소아마비, 뇌성마비 장애 후유증의 인대 수술도 많이 했다. 그당시 유행하던 관절경은 어깨는 어깨 넘어로 보기만 하고 무릎은 ACL 까지만 하고 허리 수술은 assist하는 것 까지가 내 실력의 전부였다. 그래도 그 당시 내 나이에 국내에서는 가장 수술 많이 한 의사라고 기계회사에서 인정해줬다.
그나마 개업해서는 큰 수술을 못하고 단지 직원들이 힘들지 않고 사고없을 정도의 것만 했으니 손끝감각이 계속 무뎌지지만
가정을 생각하고 경영을 생각하면서 정형외과 전문경영 의사로는 어느정도 수준은 되었다 생각하고 만족 한다.
그러다보니 수술 기구가 발전해도 따로 공부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인체 해부학에서 새로운 것이 발견될 것도 없으니
정형외과 학문에 대한 추가적인 지식 습득에 스트레스 받을 일 없다.
통증치료의 방법들은 바뀌어봤자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3차원 동물적 감각으로 금방 습득한다.

그런데 영상의학과인 내 아내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어 옆에서 신기하게 보고 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영상의학 기술이 더 앞서서 정밀해 지고 쓰이는 법적 의학 용어도 바뀌니 ( Leiomyoma를 이젠 stromal tumor라 하는등 법적 학문적 진단용어가 자꾸 변한다) 공부를 안할 수 없다.
어제는 막내 수진이가 잘 때 까지 책 읽어주다 내 책을 보는데 옆에서 의학 서적 프린트( 직장의 동료 의사들 10명이 봐야할 책이 너무 많아서 사지 않고 다같이 프린트해서 본다) 한 것 보고 있다.
내가 어쩌다가 영사의학과를 전공 했으면 저렇게 살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섬찟하다.
발전된 새로운 기계는 계속 나오고 해상도는 정밀해지니 진단상 놓치면 큰일날 일들이 많아지고 ( 건강검진 관계로 요즘 소송건수가 많아진다) 의학 용어까지 자꾸 학문적으로 바뀌니 머리에 쥐가 날 것이다.
과거 내가 학생시절만 해도 단순 방사선 필름 하나 가지고 진단했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도 있었으니 참 대단한 발전이다.
남은 생동안 양질의 서적 볼 것도 수없이 넘치는데 아침 6시반에 출근하면서도 없는 시간 쪼개가며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아직도 하는 영상의학과 아내가 참 안쓰럽다.
내가 돈을 왕창 벌면 모를까 가능성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자숙하면서 계속 막내를 내가 맡아야 겠다.
아무튼 사람은 줄을 잘 서야한다.
2011.12.9

                                                                                  황당한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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