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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진료실의 에피소드1

살아가다 보면 엉뚱함 속에서 웃음이나와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의 몸개그 땜문에 슬퍼하던 상주의 얼굴에 웃음을 주듯이 진료실 내에서도 아파서 인상쓰는 환자로 인해 다양한 미소가 걸리곤 한다. 문열고 들어오면서 초기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웃옷을 다 벗은 할머니가 결국 앉으면서 하는말이 무릎 아프다 하거나 지난 수술 사건들 다 설명하고 나서 결국 결론은 목뒤 뽀록지나 발가락 염증이다.
그럴때면 진료 기록지에 적어가는 내 손에 힘이 빠진다.
넘어지고 나서 오신 노인께 ‘괜찮을 것 같은데 찜찜하면 X-ray 확인해 볼까요?‘ 하면 ‘ 집에서 찜질은 많이 하고 왔다’ 하신다.
어느 노인분은 기껏 치료 잘 해주고 치료 효과를 보면 ‘ 몇 달전 한방 치료 받은 효과가 이제 나타나나보다’ 하신다.
이런 것은 다 노인이니 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간혹 젊은 사람들이 나를 웃긴다.
여자 환자가 앉다가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생리현상에 당황하는데 진찰하는 나도 코가 막힌 사람인양 표정 관리 하느라 고생하거나,
우아한 여성이 구두를 벗는데 찢어진 스타킹사이로 발가락이 나와 안면 근육의 흔들림을 억제하느라 고생하기도한다.
방사선 촬영하기 전에 가임기 여성에게는 결혼 여부를 물어보는데 어떤 참한 아가씨는
‘미혼인데 임신은 걱정 없어요’ 하고 자신있게 말하고 본인도 뭔가 이상한 뉘앙스를 느끼는지 밝고 이쁜 표정이 굳는다.
하긴 요즘 허리 사진을 찍으면 정말 지적인 미혼의 아가씨들에게도 IUD 있는 경우가 참 많아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는데
이정도면 얌전하고 순진한 아가씨다.
정형외과로 찾아와서 껌 딱딱 씹으면서 쇄골 나오게 수술 해달라는 생각없는 아가씨도 간혹 있는데 그런 수준의 환자를 보는
성형외과 의사들 참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하긴 입안을 보려는데 씹던 껌 버리지 않고 혀로 살짝 덮는 성인도 있고 진료실 들어와 내 앞의 의자에 앉을 때까지 핸폰 귀에 대고있곤 하니 참 가관들이다. 이젠 나도 중년이 되니 화날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사는 수준의 사람이구나 하고 처량하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넌무나 안타까운 경우도 옆에서 같이 보게된다.
일년 내내 혼신을 다해 준비하던 체육대학 입시 앞두고 손가락 골절 되어버린 수험학생,
결혼 앞두고 무릎 인대 다쳐 다리 석고 고정하고 신혼여행 가야할 신랑,
자녀 결혼 앞두고 발목 골절 되어버린 모친,
졸업 40주년기념 동창 부부동반 해외여행에 총무가 허리 골절로 못가게 되고...
참 회복 가능하긴 하지만 시기적으로 참 안쓰러운 경우가 적지않게 있다.

그래도 손주 목마 태우다 계단 2-3개 헛디뎌 목골절로 사지전체 마비된 할아버지,
산에서 윗몸 일으키기 운동하다가 발이 빠지는 통에 목을 다쳐 평생 휠체어신세된 중년,
친구가 태워주는 오토바이 잠깐 동석했다가 두 다리 절단된 우등생등 회복 불가능한 경우에 비하면 회복 가능하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50세도 안됐는데 곧 할머니 되는 뒷모습 20대의 멋진 중년여성,
70세 넘어서도 청바지 어울리는 마라톤 마니아 멋쟁이 할아버지,
오지만 찾아 여행 다니는 정열의 40대 중년부부,
넉넉하지 않은 편모 가정 환경 속에서도 참 밝은 성격이 성실한 학생등은 내게 아름다운 자극되는 좋은 스승 들이다.
이렇듯 지나가는 모든 인생들 다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간혹 그중에는 내 삶도 무단으로 속해지고 싶어 혼자 조용히 조연을 꿈꾸기도 해본다.
오늘도 그런 작품 또 만들어보고자 커피 마시면서 진료실에서 스탠바이 한다.
2011.12.10

                                                                < 1977년 속도위반 즉심에 걸린 빌 게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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