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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조선 후반기의 주요 역사

 

1.태조 - 2.정종 - 3.태종 - 4.세종 - 5.문종 - 6.단종 - 7.세조 - 8.예종 - 9.성종
10. 연산군(1479~1506) ; 명필가, 시인, 조울증 증세있었음.

* 무오사화(1498 연산군 4년)

원인
사초에 기인하여 발생하였다. 연산군 때 선왕인 성종의 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사국을 열었는데, 이 때 당시 사관인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이 발견되었다. 조의제문은 단종을 항우에게 죽임당한 의제에 비유하여 그 죽음을 슬퍼하고 세조의 찬탈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결과
이에 훈구 세력들은 연산군을 꾀어 김일손 등 그 일파를 죽이거나 귀양보내었고 김종직을 부관 참시하였다. 이극돈·유순·윤효손·어세겸등은 수사관으로서 문제의 사초를 보고하지 않은 죄로 파면하였다. 이로써 사화 발단에 단서가 된 이극돈이 파면된 뒤 유자광은 그 위세가 더해진 반면, 많은 사림파 인사들이 희생되었다.
* 갑자사화 ( 1504년, 연산군 10년)
원인
왕후 한씨가 죽고 후궁인 윤씨가 왕비로 책봉됨 (연산군 어머니) -> 성종을 윤씨가 때려 용안에 상처를 입히고 폐비됨

 -> 시기한 성종의 어머니 한씨에 의해 사약 받음
결과
사림 세력 뿐 아니라 훈구세력까지 심하게 타격 받고 연산군의 입지가 약해짐.

11. 중종 ( 중종 반정후 등극)
* 중종 반정 (1506년, 연산군 12년)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의 생모인 대비 윤씨의 허락을 받고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성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 연산군은 훈구 세력과 신림 세력의
대립속에서 왕이 되고나서 결국 그들로 인해 축출 되어버림


12. 인종 - 13. 명종 - 14. 선조 -

15. 광해군(1575~1641) ;
명과 후금(청) 사이의 중립 외교를 잘 수행함 ,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도와 훌륭히 국정 운영을 도왔으나

  선조는 막내아들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함.
-> 선조가 승하하자 대북파의 지지로 광해군이 왕이됨
-> 영창대군 살해 (1614년) 계모인 인목대비의 부친 살해
-> 인목대비 폐위 -> 서인 반발 -> 인조반정으로 폐위

* 인조 반정 (1623년(인조 1)
서인(西人)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파(大北派)를 몰아내고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의 윤허를 얻어

능양군(綾陽君)종(倧: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


17.효종 - 18. 헌종 - 19. 숙종 - 20. 경종 -
21. 영조 ; 노론의 지지로 왕이 되어 탕평책을 씀.
사도세자; 사도(생각하고 슬퍼한다는 영조의 시호)
영조 40년에 본 늦둥이로 2세에 세자 책봉 되었으나 소론과 가까운  무인기질로 노론의 미움받음

 -> 노론의 이간질로 뒤주에서 아사 (28세)


22 정조 - 23. 순조- 24. 헌종 - 25. 철종 ( 23~25; 안동 김씨정치 )

 

                                              ( 사랑스런 조카 정현이의 나라사랑하는 작품 )


                                                                  

 

26. 고종 ; 헌종과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조씨가 흥성군 이하응의 아들 이재왕을 왕(고종)으로 결정(1863년)
                                                                      - 조선말의 불안한 정세로 안동김씨와 풍향 조씨가 권력을 분배함
1864~1873년  ; 대원군의 쇄국정책
1876년(고종 13) ; 한 · 일수호조약(일명 강화도조약)으로 인해 대원군이  취한 쇄국정책이 무너지고,

                                     개화파(開化派)와 수구파(守舊派)의 대립이 날카롭게 일어남
1882.7; 임오군란 ;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別技軍)이 급료와 보급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 데 비해 구식군대인 무위영(武衛營) ·
                           장어영(壯樂營) 2영의 군졸들 의 천대에 반발한 난리.
                         --> 책임을 물어 대원군은 청나라로 압송 되고 일본은 제물포 조약으로  주모자 처벌과 손해 배상을 청구함
                                        ( 개화파와 보수파의 앙금이 생기기 시작하여 갑신정변의 빌미를 제공함 )


1884년 갑신정변 ; 1884년(고종 21) 김옥균(金玉均)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 박영효, 서재필,서광범, 홍영식등 양반집 자제들)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일본의 힘을 빌어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
                         청나라의 힘을 빌어 정권을 유지하려는 민씨 일가를 반대하는 개화파  세력들은 마침내

                         1884년 8월 베트남에서 청나라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청나라는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군사 3000여 명 가운데
                          절반을 철수시키자 거사를 일으킴.

                          거사에 성공하고 고종의 허가를 받아  혁신적인 개혁 과정을 수행하려하였으니 청군의 개입으로 3일만에 끝남

1895.4.17; 청일 전쟁 일본 승리
               동학운동 -> 민씨 정권 청나라 파병 요청 -> 텐진 조약 구실로 일본도 파병  -> 동학운동 소강

             -> 정나라 철병. 일본을 철병 거부  -> 청일 전쟁(1894.6~1895.4) -> 일본승리후 대원군 내세워 민비 추출

             -> 온건파 친일 정부 수림 -> 갑오개혁 시작

갑오개혁 ; 1894년(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 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말한다.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년 8월~1896년 2월)
제3차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개혁’이라고 부른다.
              1차 개혁 ; 대원군 섭정 시작,노예페지. 연좌제 폐지... 친일 내각 우세
              2차 개혁 ; 사법부 2심제도입... 박영효의 왕 음해사건으로 추출, 친러,친미세력 우세 
              3차 개혁 ; 을미개혁, 단발령, 종두법등.... 을미사변후 친일내각 붕괴 ( 온건 개화파 김홍집 내각 붕괴. 피살됨)

1895.10.8 ; 을미사변 (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
1896.2.11; 아관파천 ( 미국 공사관으로 가려다 실패하고 3개월후 러시아 공사관으로 감 )
1897년 ; 대한제국(大韓帝國) 성립 
             광무개혁 ; 1897년 성립된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완전한 자주적 독립권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까지 열강의 세력균형기에 자주적으로 단행한 내정개혁이다
1905년 11월 17일에는 을사조약(乙巳條約)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강탈하였다.
1907년 8월 ; 순종 즉위 ( 고종 강제 퇴위 )

27. 순종 ; 1907년 8월 즉위 , 융희 연호 시작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이 강제체결 
          8월 29일 공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짐


     -네이버 부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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