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에도 시험은 있었지만 왠지 교복을 입고 학생생활을 시작하는 중학교 시절 부터가 제대로된 학창 시절같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 중학교의 첫 중간고사는 기억이 뚜렸하다. 나도 여의도 중학교에 입학해서 첫 중간고사를 망친 기억이 난다. 그냥 긴장과 뭐 이런저런 이유로 반에서 9등을 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었다. 하도 황당해서 어머니도 화를 안내셨다. ( 자랑질 하자면 다음 기말 고사때 전교 1등을 했다.)
큰 아이 중1 첫 시험 때 집은 전쟁터였다 엄마는 수 주일 전부터 기출문제 뿐아니라 참고서도 여러 권을 미리 풀고 아들과 토론하면서 착실한
형규를 때리면서 소리도 많이 질렀다. 학원에서 뺑뺑이 돌면서도 집에 와서 엄마에게 구박 받으며(?) 공부하는 형규를 보면서 참 안쓰러웠다. ( 형규 일기장에 죽고 싶다는 내용을 보고 한동안 소란스럽기도 했다.) 하여간 그때 분위기상 나는 죽은 듯이 조용히 지냈다. 그것이 아빠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뭔가 잘못 된 것 같지만 해결 방법 또한 없었다.
(한때 유행하던 자녀 공부에 중요한 3가지가 있었다. 1.엄마의 정보력 2.할아버지의 재력 3.아빠의 무관심. 참 이 세상 아빠들은 불쌍하다.)
( 20여년전 어느날)
3살 아래인 둘째 효진의 중학교 첫 시험때도 비슷했다 항상 정신없이 학원을 돌면서 공부에 지친 모습이 이슬비 맞은 아침 신문 같았다. 자신이 시간을 갖고 학업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컨베이어 밸트에 묶여서 자리 이동만 계속 반복하는 모습이 분명히 잘못 되었지만 그때도 해결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아내는 새벽에 병원으로 출근하면서도 아이들 학업에 대해서는 참 억척이었다. 그런 치열한 전쟁 중에 괜히 불똥이 내게 튀는 일 없게 나는 쥐 죽은 듯이 병원 일 만 하면서 조용히 보냈다. 나는 하는 일도 없는데 무슨 고문인지 시험 기간은 무조건 조기 귀가를 강요당하는 억울한 상태의 연속이었다. 힘없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세월은 흘러 드디어 어제부터 10살 아래 막내 수진의 중학교 첫 시험이 시작되었다.
늦둥이 귀한선물로 태어나 언제 키워서 사람 되나 싶었는데 벌써 할 말 다하는 무서운 중학생이 되어 시험을 본다. 교복입고 등교할 때 마다
참 고맙고 기특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번 첫 중간고사는 집안이 고요하다. 엄마도 막내도 천하 태평인듯 하다. 시험 전에도 집안에
긴장감이 돌지 않고 그저 평범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아이의 시험 범위도 잘 모르고 내게 조기 귀가의 강요도 없다. 그저 수진이가
나를 심부름 시킬때만 찾을 뿐이다.
어제 저녁에 방이 너무 조용해서 가보니 모녀가 같이 불을 환하게 다 켜놓고 침대에 누워 곤히 자고 있다. 불 켜진 책상 위에 참고서도 별로
없고 시험 기간 같지도 않게 그저 평범한 분위기다. 간혹 수진이가 장난삼아 만들던 젤리 덩어리가 또 있을 뿐이다.
나는 아이가 전날 공부 안하고 잔 것을 황당해 할까봐 내가 잠을 뒤척이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에 신경써서 깨웠다. 그런데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처럼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조용하고 우아하게 깨어난다. ( 보통 그렇게 일찍 자면 놀래서 일어나 짜증 내고 울고 하면서 안절부절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깨운 것을 귀찮아한다. 오늘이 시험날이 아닌데 내가 깨웠나 싶을 정도다.
잠 설친 내가 머리가 띵해서 다른 방에 가서 누워있는데 수진이는 ‘자기는 공부하는데 아빠는 잔다’고 사진을 가족 단체 방에 올리면서
평화롭게 웃는다. 시험을 앞둔 아이 같지 않게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자기 말대로 멘붕상태인 듯 하다. 그런데 부모는 그냥 막내의 그런 속없이 웃는 모습만 봐도 그냥 이쁘다
이래서 막내는 버릇없어지나보다. 그냥 이대로 계속 천진난만하게 컸으면 좋겠다. 아빠가 살아보니 <행복은 성적순 아니더라> 말해주고
싶어도 아직 그것까지는 참아야겠다
그냥 우리 모든것을 감사하고 그냥 행복하자^^
이번 첫 중간고사는 조기 귀가의 강요도 없는데 기쁜 마음으로 일찍 들어갈 것 같다.
요즘은 날 찾는 친구들도 없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