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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직업적인 경험



난 정형외과 의사로서 주로 대하는 환자가 노인들이다. 주로 관절염이 있어 고생하시는 분들.
나이가 드셨지만 한때 젊은시절이 있었던 그런분들.
교통사고 환자 (일부 합의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얄미운 사람 포함ㅋㅋㅋ), 운동하다 다친 사람,
근육통과 같이사는 막노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온 몸의 모든 관절이 세월을 이야기해주는 노인분들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x-ray상에 보이는 심한 정도와 그 상태를 표현하는 얼굴 표정의 변화에는 상관관계가 없어보인다.
분명 아주 심하게 한마디로 망가져있는 무릎,허리인데 그럭 저럭 잘 생활 하시고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별로 관절염이 심하지 않는데, 여러 정황을 봐서 내 전문 지식을 다 동원해도 정형외과 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데

통증의 표현이 너무 과하다.
이럴땐 보통 신경정신과로 잘 설명해서 억지로 넘기고 싶지만 그게도 그렇게 되질 않는다. 
 

‘ 당신 참 안쓰럽게 인생 산다’

식당에서 일하신다는 어느 아주머니는 분명 사진상 아주 아플 것 같은데 오실때 마다 좋아진다고 웃으면서 치료하시는데
어느날 식당에서 칼로 손가락 끝 마디의 살점을(거의 2*1cm 정도로) 잘려서 오셨다.
한마디로 살점이 왕창 떨어져 나가버린 상태다.

아무리 나이들어도 그 손가락의 머리카락 다발을 쭈삣 세우는 그 통증은 나도 상상이 어느정도는 가는데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 무릎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란다. 으악! 이럴수가.
그 이후로 그분이 내게 오면 난 호텔 입구에 서있는 벨보이처럼 그분을 대한다. 진정한 그 인내력에 대한  존경심에서.

과연 난 통증에 대해 얼마나 잘 참을 수 있는 훈련을 하고있는가.
난 과연 어느정도 수준의(통증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일까?
학교 다닐때 땀과 스릴을 만끽하며 암벽 타면서 제일 존경하면서 따르던 사나이다운 사나이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 따라 결국 정형외과를 한것이지만.
그런데 그 멋진 산 사나이 선배가 단순 맹장으로 수술 후 아프다고 어찌나 진통제 놔 달라고 시도때없이 후배들을 불러 들이는지.
“ 야 임마 빨리 와서 하나 더 놔! 아파 죽겠다야!”
지금도 생각하면 미소짓게하는 일화지.
anyway
들어오는 환자들 표정을 보면 그동안 어떠한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인생경로를 지나오셨는지
지금의 닥친 상황이 어떤지 어느정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의사 생활 10여년에 이 정도면 한 20년 됐을때는 전업하지않을까? 사실 요즘은
정다운 스님의 ‘인생 십이진법’ 책을 틈틈이 보면서 사주와 관상학에도 관심을 갖으려하지.
용띠 월천인 천액성 대세지행....)
딱 feeling이 오는 그런 표정으로 진찰실에 들어오면 아예 내 혁띠 풀고 자세 편하게 잡고
긴 인생 푸념 들어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인생다큐를 생방송으로 보는 느낌이랄까.

수 많은 주름 중에도 눈가에 깊이 새겨진 미소주름은 나를 진지하게 되돌아 보게 하면서도
양 눈썹 중앙의 굵은 계곡 주름은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날 짜증나게 한다.
난 어떻게 늙을까? 어떤 표정의 인간이라고 미래의 젊은 의사가 날 평가할까?

아무나 붙잡고 집안 흉보는 속없는 노인일까 ?
뻔한 말 반복하며 되도 않는 고집피우면서 자기주관을 관철시키려는 노인일까?
요즘은 변했지만 옛날에는 그랬다고 가르쳐주는 듯 하며 자신의 넉두리나 하는 노인일까?
한때 자기만 대단했던것 처럼 가식하며 떠드는 노인일까?
맥없이 방 구석에 틀어박혀 가지 않는 시간만 기다리는 어두운 얼굴의 노인일까?

아니면 정말 젊은이들도 존경할 만한 긍적적이고 건강한 밝은 눈빛의 노인일까?

난 한때 그런 생각을 했다. 구차하게 길게 살 것 없이 딱 70되면 깨끗이 세상 뜬다고.
그런데 지금 내 꼴을 보면 그때까지 갈 것 같지도 않고 가더라고 갤갤거리며 간신히 갈 것 같다.
난 머리는 몰라도 체력 하나는 하늘에서 받은 선물이라 자신했는데 요즘은 말이 아니다.
안자던 낮잠 꼭 자야하고 경멸했던 찜질방 좋아하고 산책하며 팔흔들고 다니고
(뛰긴 싫어서,심지어는 뒤로 걷기도)
밤마다 체중기에 올라 한숨쉬고, 한달 간격 약혼식과 결혼식 날짜 자꾸 헷갈리고,
잘 기억하던 환자얼굴도 혼동되어 오랜만입니다! 하고 반가운척 하면서 아는척했는데 알고보면
어제 왔던 환자지. 환자 표정은 으이그~ T-T
운동하면서 표정 관리,마음관리, 대인관리,인생관리,가족관리 등을 두루두루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열심히 해야 그나마 간신히 70까지 건강하게 갈수 있을 것 같다.
(나카소네는 나이 85세 인데도 징스럽게 아직도 정정하단말야)

지금 생각으론 난 늙어서 혹은 아파서도 의사 앞에서 적당히 하소연 할 것 같다.
열심히 해봤자 그놈 속 뻔하니까. 결국 제 3자일 뿐이다.
사람이라 한계가 있는데 그게 의술도 그렇지만 인간성도 그렇지.
결국 인명은 재천이니 할 수 있는데 까지 내 최선을 다해 자기관리 해보고 그래도 안돼면
그냥 그대로 가다가 미련없이 뜨는거다.

혹시 옆사람 붙들고 끝까지 안 뜨려고 발버둥 치는 추태를 부릴까봐 두려우니 안그럴려면
믿음을키워 신안인이 되면 좋은데 참 어려운 일이다.
미국 영준이가 내게 보내준 어느 목사님 설교책들 저자가(전병욱 목사님) 우리동네에서 설교하신다.
인생 추태 안부리게 한번 가서 하나님께 눈도장이라도 찍어야겠다.
어짜피 진짜 인생의 속 심지는 자기 혼자니까.

어짜피 내 혼자 인생이니까.

2003.10 (고교 홈페이지에서)

                                                                                  <  10년 만의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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