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각자의 특별한 추억이 있어 삶의 찌들음 속에서도 미소를 띄울 수 있다 한다.
여러종류의 추억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각자의 삶이니 다사다난($%@*)할 수 록 결국 멋지겠지만 그래도 이젠 나도 평탄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모험을 피하려는 나이는 되었나보다.
잠시 있던 일본에서 돌아와 평생 기억을 갖을 수 있을 나이가 됐을 무렵 삼촌과 함께 청계고가 위를 달리며 봤던 그 웅장한 3.1빌딩의 화려함.(고가와 고속도로를 구별 못하는 그때 무슨 로봇이 생각났었는데)
아버지 은행에 간혹 외식하러 가면서 우중충한 터널같은곳을 지난 것으로 기억되는 고가밑의 어두움.
고연전 정기전 후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며 누볐던 최루가스 퍼진 눈물의 그곳.
한 여름 첫(?) 미팅 후 종로다방에서 명보극장까지 걸어가면서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 그늘 건널목.
간혹 택시타고 학교갔던 청계고가의 시원한 속도감
병원 근무하며 내 첫차(선배에게 물려받은 황색 스탤라)로 신나게 달리던 새벽의 아우토반.
특별히 내게 해준 것이 없는 듯 하면서도 막상 떠난다니 아쉬워 우리아이들을 다 태우고
병원 퇴근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엄청나게 밀리는 월요일 저녁 10시.
미련한 짓일 듯 싶어도 그냥 하고싶은데로 했다.
큰아이에게 추억을 남기고자 꾹 참고 앞차를 따라 걸어가듯 한남대교를 건너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청계고가 초입에 들어서니 주차장이 되어버린 고가도로.
으악! 빈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화려하게 변해버린 고가주면의 모습은 내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나만 변한게 아니구나....
철거를 반대하며 주위 허름한 아파트에 걸려있는 삶의 사투흔적은 내게 야릇한 긴장감을 주고....
라디오의 전화 신청접수도 처음으로 되어 집사람과 아이들이 메스컴탔지.
“지금 왜 거기 청계고가에 있어요?”
“아이들에게 추억을 주려고요.”
“몇살인데요?”
“12살,8살 1살이요”
“아, 네~ (한심한 듯)”
“지금 그곳 상황이 어때요?”
~~~~~
~~~~··~
“고맙습니다.운전 조심하세요”
( 어? 선물 안주나? )
철거 개시 시간인 자정을 뒤로 하고 아쉬움을 머금은채 청계 고가를 등으로 타고 내려온다.
광교에서 종로의 화려함을 좌측으로 현란한 동대문을 우측으로 보내고 곧 잊혀질 허름한 건물들의 황량함과 황학동 벼룩시장의 파라솔 사이로 흩어져 퍼지는 불빛을 너머 아쉬운 이별을 고하고 먼길 돌아 집으로 오니 다들 차 뒤에서 깊이 자고 있다.
먼 훗날 ‘청계고가 철거후 50년’ 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나를 기억 하겠지?
지금은 괜히 따라갔다고 엄청 심통부리지만...
오늘은 차 안에서 정말 잘 참았다. 영근아 장하다.
2003.7
< 복개공사 전인 1960년대초 풍경, 청계고가는 1967~1974년까지 공사로 준공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