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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트럼펫

고교시절부터 금관악기를 배우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밴드부에 들어야하는데
고등학교 밴드부라는게 엄청 불량한 수준이라 도저히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일부 친구들이 밴드부를 거쳐서 음학대학을 나와 지금도 잘 지내고 있긴하지만 그것은 그 친구들의 천부적인 재증일 것이고
단순한 취미 이상을 기대 안하는 나로서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알바를 해서 83년 당시로서는 거금인 10만원을 들여 세운상가에서 트럼펫을 사서 여름 방학에 배우기 시작했다.
우연히 종로 3가에서 나의 첫사랑을 만나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었는데도 기본 인사만 하고 빨리 음악 학원에 갈 정도로 심취했었다.
계속 바람 새는 소리 나면서 어지럽기만 하다가 약 1주일만에 삑~소리가 날때의 기분은 최고였다.
그 이후로 자연스럽지는 못해도 계음을 낼줄 알게 되면서 조금 씩 나아졌지만 소리내는 것만도 어려운 악기를 배운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일단 소음이 문제라 도대체 서울 시내에서는 음악 학원 말고는 연습할 곳이 없었다.
간혹 여의도 윤중제에서 하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게다가 학기중에는 연습할 장소도 시간도 없었고 배우기 어려운 악기의 특성상
점점 지치게 되더니 나의 악기는 장롱 속에서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십수년이 지나 군의관으로 배속된 사단 의무대 윗층이 우연히 군악대인 관계로 수시로 들리는 합주소리는 나를 다시 자극 시켰다.
하지만 주임 상사는 트럼펫 배우기에는 나이가 많아 오히려 혈압에 문제 생길 수 있다면서 내게 색소폰을 권했다.
결국 제대 앞두고 군기가 다 빠진 군악대 병장들을 포경수술 해주면서 개인 레슨을 받았다.
옆에서 트럼펫 부는 상사를 보면서 많이 부럽기도 했지만 은은한 색소폰의 소리에 빠지면서 아쉬움은 없었다.
군악대 친구들을 맥주와 과자로 매수해서 집사람 생일에 써프라이즈 파티로 색스폰 연주도 해봤다.

( 감동은 커녕 연주하면서 땀 뻘뻘 흘리는 내가 너무 안쓰러울 수준이었다함 ㅜㅜ)
그렇게 군대를 마치고 다시 도시 생활을 하면서 장롱속엔 2개의 금관악기가 먼지 쌓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잘 부르면 특별히 욕먹지 않고 집에서도 할 수는 있겠지만 아파트특성상 왠만해서는 연습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그 욕망이 고개를 든다. 30년된 트럼펫을 다시 꺼내 힘주어 불어보니 아직도 소리는 난다.
아들 형규는 당연히 바람 새는 소리만 내고 막내 수진이는 신기한 듯 들고 폼한번 잡아본다.
내가 후회 되는 것이 있어 아들에게 좀 배우라 해도 아직 할 일들이 많아 내 말을 듣질 않는다. ( 나중에 후회할텐데...^_^)

내 인생 길이 어느정도 정해진듯한데 이젠 이것 저것 하면서 좀 폼나게 꾸미며 가꿔볼까 한다.
음악도, 요리도, 마라톤도, 여행도 다 해보고 싶다. 아직은 세상 빚이 많아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사회의 일원으로 살긴 해야 하지만
명의가 되거나 재벌 계열에 속하는 대박은 물건너간 삶이니 그저 내 하고 싶은 것 조금씩은 하면서 주어진 시간들을 후회없이 써야겠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난 내가 사장이자 사원인 주식회사 ‘나’의 대표이사인데 말이다.
20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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