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1973년 일본에서 초등학교 다니다 한국으로 와서 제일 놀랐던 것이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여자 선생님을 보고나서다.
얼마나 놀랬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 엄마 선생님이 학생 뺨을 때려요 "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내 눈에도 그런 폭력은 일상화 되어 무덤덤해졌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폭력에 둔감해진 야만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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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에서 자라던 애들을 끌고 귀국했다.
딴에는 한국인으로 키워 장성하면 두 문화권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랐으면 희망했고, 미국에서 계속 자라면 미국인 그것도 소수 민족의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선택만 남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내 학교 가까운, 그래도 강북에서는 인기 있다는 사립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켰다.
학교에 공개수업과 학부모 봉사 날이라고 해서 학부모로 학교엘 갔다. 점심 시간을 지나고 한참 후에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있는 교실의 복도를 지나다가 열린 창문을 통해 책상 위에 식판을 앞에 둔 채 있던 아들이 나를 마주치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닌가? 젊은 여선생님의 변명이 시작되었다. 우리 애가 생전 처음보는 해파리 냉채를 먹지 않아서 편식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시키기 위해 식판을 두시간 째 치우지 못하게하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는 것이다. 먹을 것을 강요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문화적 충격으로 애는 말을 잊지 못했다.
딸애는 미국에서 올 A가 아니면 큰일 나는 줄 알던 애다. 수학은 두 학년 월반했었고 스펠링 비(Spelling bee) 대회에서 100년도 넘는 역사에서 처음으로 최고 학년이 아닌 4학년이 우승을 할 정도로 학업에 열심이고 자부심이 강한 아이었다.
그런 애가 한국 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주는 수학 (산수) 숙제는 학원에서 니가 공부하는 문제집 5장씩 풀어 오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학생들은 다 다른 문제집을 풀어오니 선생님이 그걸 제대로 확인할 리가 없다. 한국어가 서투른 딸애는 새벽까지 한국어 변역을 해야하는 나를 부여잡고 문제집을 풀어가면 담임 선생님은 장수만 세고 아무 피드백도 없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데 딸애는 너무 어이없고 당황해 했다. 이게 학교 현장이다.
어느날 같은 학급에 학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약간의 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이 자신을 누가 흉본다고 일기장에 쓴 것을 일기장 검사하는 선생님이 발견하고 일기장에 적힌 가해 학생을 불러내서 야단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지적 장애 학생이 자신을 흉본다고 엉뚱한 학생을 지목했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야단 맞는 학우를 위해 내 딸은 손을 들었다. '내가 진짜 발달 장애 급우를 소외시킨 애가 누구인지 일러바칠 수는 없지만 지금 선생님이 야단치는 애는 억울한 애다'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일기장 검사라는 어이없는 사생활 침해가 가져온 불상사다. 그래서 나는 학생 인권조례의 학생 사생활보호 의무를 지지한다.
화가 오른 상태의 선생님은 넌 입닥치고 있으라고 호통을 쳤고 입닥치라는 말을 직역한 우리 애는 선생님이 감정 자제도 못하고 욕설이나 한다고 교실을 뛰쳐나오며 나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선생님은 성냥 공장 노동자로 일할 자격도 없다"라며 내게 울며 내게 이런 학교를 다니라는 것이라며 항의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실수를 알면서도 왜 다른 급우들은 아무도 말을 못하고 조용히 있나며 애들이 모두 Jelly Fish (소신없는 겁쟁이들)이라며 분해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나는 담임 선생님에게 호출되었다. 당시 집사람은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었고, 내가 딸애를 돌보던 때라 학교에도 내가 불려갔다. 나를 보자마자 하는 선생님의 일성은 자신의 학생에 관한 걱정이 아니라 애가 울면서 학교를 나가버리면 교장 선생님이 자신을 어찌보겠나는 것이었다.
이게 내가 경험한 대한민국의 학교의 현장이다. 나는 세상이 바뀌어 학교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아니었다. 여전이 교사들은 학생을 인격체로 대하지도 않고, 권위의 뒤에서 학생들이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게 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의 일차적 관심이 학생이 아니라 자신이었고 내가 자랄 때보다 학교가 공부는 학원에 위임하는 교육이 파탄난 모습이었다. 왜 우리 자식들은 다른 나라의 자식들처럼 인격적으로 대접 받고 학교가 재미난 곳이면 안되는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구타에 준하는 체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내 경험을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우리 애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경우라 특수한 경우일 수 있고 데이타는 고작 내 아들 딸 두 명일 뿐이다. 나처럼 고집 세고 눈치 안보고 정서적으로는 예민한 우리 애들의 특수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20년 전의 이야기다. 그간 얼마나 정상화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에 귀국한 교수들과 외국인 교수들의 충격을 들어보면 별반 개선은 없는 것 같다.
상황이 다르면 현장의 분들이 또는 자녀가 학교에서 어찌 지내고 대접 받고 있는지 잘 아시는 학부모께서 깨우쳐 주시기 바란다.
이런 상황이 학생의 인권이 과보호 상태로 교사들에게 불리하도록 기울어진 상황이라고 생각되는가? 이런 교사들의 태도가 학생들을 인격체로 보는 민주적 교육이라고 보는가? 공부는 힉원에서 하고, 낮에 애들 봐주는 선생님에게 학생들이 얼마나 존경과 감사를 할 것 같은가?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경쟁하는 학교의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학부모가 학교 운영이나 교과과정에 대한 통제나 감시도 없는 시스템이다.
나는 학부모, 학생 탓하는 지금의 여론을 수긍할 수 없다. 총체적으로 봉괴되고 있는 학교의 문제를 학생인권조례 문제로 단순화하는 이 성급하고 비논리적인 주장들도 수긍할 수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에서 학생들은 온전하고 자유로운 인격체로 대접 받지 않고 있다. 그 어떤 선생님도 평가를 통해 퇴출되지도 징계되는 경우도 거의없다. 바뀌어야 되는 쪽은 학생과 학부모보다 선생님들이 먼저다. 교육의 임무를 찾아오고 교실이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려는 발버둥도 선생님들이 주도해야한다. 누가 해줄 수 있나? 인권을 침해 당하는 사례는 교사보다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내 자식들을 문화적 충격에 몰아넣은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귀국한 것을 후회한다면 이것이 가장 큰 이유다.
우리는 본질적 문제를 외면하고 엉뚱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현장에 있으면 잘 보일 것 같지만 시스템 내부에서는 문제를 제대로 보기 힘들다. 이제야 교사중심의 독점 체제에 소비자가 발언권을 행사하니까 교권이 무너졌다는 아우성들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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