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야마하 피아노를 떠나보내며 요즘 주변정리를 시작했다. 굳이 미니멀리즘이라는 거창함 보다는 그냥 타성에 젖은 두터운 겉옷을 벗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에^^ 여기보다 더 사랑받을 곳으로 시집보낸다니 위로는 된다. 나와 함께 50년이상을 동행했으니 이제는 더좋은 곳에 가서 잘 살아라. 일본을 시작해서 여의도ㅡ옥수동ㅡ원주 ㅡ대전ㅡ도곡도ㅡ대치동으로 참 많이도 같이 다녔다. 오늘 치는 피아노 소리는 산도 높은 이별의 와인 한잔. 그동안 고마왔다. 기꺼이 받아서 곱게 키워준다는 야마하본사에 감사드린다. 더보기 키워리어 SNS는 평범한 사람을 세태의 재판관으로 만든다. 지극히 이성적 판단이라는 자만심아래 익명이라는 탈 뒤에서 타인의 상황을 함부로 정죄하게 된다. 본인의 결점은 무시하면서 타인의 것을 크게 지적질한다. '자기 PR'의 21세기 변명으로 이기적 행위가 용서(?) 되는 세상이다. 현재 아프카니스탄의 카불에서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저렇게 데모를 한다. 탈레반 정부의 반인륜적인 폭거로 살해당할 위험을 무릎쓰고 한다.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과연 나라면? 지금도 타자 치면서 타인을 지나치게 자극시키는 용어는 감히 사용도 못하면서? 아무쪼록 좋은 결말이 되길 기원하며 저분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더보기 내인생 사건사고 1970/ 일본 생활 1973/ 선생님의 학생구타 첫경험 (일본에서 못보던것을 한국에서 수도없이 경험) 1974/ 육영수 암살 1978년 6월 18일 첫사랑에 빠짐. 1979/ 박정희 피살, 12.12 사건 1980/ 광주 5월 (어렴풋이 이모 통해서) 1983년 아웅산사태의 뉴스를 보고 말 잘못해서 경찰서 조사받을뻔. "아깝다. 전두환을 보낼 수 있었는데" 1990/ 결혼 1995/ 삼풍백화점 붕괴 ( 이외에도 항공기, 성수대교등 사고) 1997/ IMF 재앙 1999/ 연평해전 1차 2000/ 의약분업 2001/ 미국 911 테러 2002/ 연평해전 2차와 한일 월드컵 (삶의 모순) 2003/ 노무현 대통령 당선 2004/ 황우석 사건 2006/ 북한 핵실험 2008/ 광우병 선동 2009/ 노무현 .. 더보기 30년의 귀환 큰아이가 뱃속에있을때 아내의 원으로 (임신시 원을 안들어주면 평생고생한다는 선배의 가르침에따라) 왔던 당시의 맛집을 30년만에 왔다. 레지던트시절 어쩌다 집에 들어가서 쉬고싶은 휴일이서 내게도 기억이 나는곳이다. 여전히 그곳에 허름하게 있었다. 유명하다는 완자를 먹고 아내 왈 "그때 식어서 아쉬웠는데 오늘도 그러네" 순간 등골 오싹. 여자의 기억력은 무섭다. (실수하지 말아야지ㅋㅋㅋ) 지난 세월만큼 나도 몸이 저렇게 허접해졌겠지 싶지만 일단 맛은 심심해서 좋았다. 다음에는 미래의 손주랑 와야겠다. 주변 -세미원- 강력추천 더보기 미래의 비젼 누구는 미래를 보여주지만 누구는 과거에 집착한다. 누구는 풍경을 보여주지만 누구는 창고로 쑤셔넣는다. 누구는 대중에게 희망을 주지만 누구는 패거리에게만 욕정을 준다. 누구는 정열을 주지만 누구는 절망을 준다. 누구는 상처를 낫게하지만 누구는 생살을 후빈다. 내 인생 인연이 여기까지 일 뿐일까? 과연 죄에 대한 벌을 받을 수 있는 정의가 실현될까? 그게 아니라면 신은 없다. 더보기 아버지의 추억 내가 결혼하고 한참 병원에서 일할 30대 였던것 같다. 아버지는 살아보니 제일 좋은것이 정도를 걷는 인생이더라 말씀하시면서 물어보셨다. "내 인생 성공한것으로 보이니?" 전라도 보성 시골에서 태어나 광주유학을 거쳐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서울대학교를 나오시고 (우리집 가문에 60여년이 지난 아직도 서울대 출신이 없다.) 그 당시 제일 취직하기 힘든 은행권에 당당히 취직하셨다. 해외를 나간다는 것이 민간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1970년대초에 오사카 지점으로 발령받아서 우리가족을 선진국 일본에서 환상적으로 3년 넘게 생활할 수 있게 하셨다. (한국에서만 비싸던 바나나 엄청 먹었지.) 귀국해서 당시 한국에서 제일 좋은 동네라는 비행장있던 여의도에서 우리 삼형제를 다 키워주셨다. 여의도 초,중,고를 진급시 옆 .. 더보기 남극 기지 인연 지금 위치로 병원을 이전하고 얼마 안돼서 남극에 건설중인 장보고 기지현장에 수술 가능한 의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고민끝에 담당자를 만나서 협상했다. 당시 남극까지 갈 정헝외과 전문의는 없을테니 가겠다는 의향을 보인 내가 필요해서인지 몰라도 현대 건설회사에서 직접 병원까지 찾아왔다. 총 9개월간의 근무 기간동안 그 중간에는 귀국할 방법이 없으니 그점 각오해야한다고 했다. 많은 걸림돌이 있었지만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를 놓치고 싶진않았다. 아이들도 눈에 밟히고 집안 어른들도 조금은 걱정되긴 했지만 가고 싶었다. 역마살이 또 발동하기 시작했다. 9개월간 남극에서의 생활하기가 힘든 환경이겠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극도의 홀로됨 그리고 자잘한 사회 파편들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더보기 민족성 차이 일본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덕에 애증의 역사가 가슴에 진하게 염색돼있다. 여러가지 지형적 역사적 정치적 차이가 있기에 그 속에서 세월을 타고온 사람들의 생각에 큰 차이가 있을수밖에 없다. 세상사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없고 단지 상대적으로 다를 뿐이다. 그래서 모든것을 나만의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 할 수는 없다. 이성적으로는 분명히 알겠다. 그래도 그렇지 남편의 불륜을 왜 아내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는것이 이해가 될까? 심지어 남자의 모친까지 사과를 한다? 보통은 최대한 숨어서 시간이 해결해주기만 기다리는데 정말 이해가 안되는 사회다. 과거 중동에서 혼자 여행하다가 IS에 납치된 일본 청년이 참수되기 전에(물론 본인은 몰랐겠지만) 공개적으로 자국민에게 심려끼쳐서 죄송하다고 말하는것이 방송됐었다. 우..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 32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