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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야기

광란의 PC주의 광풍속 잔잔한 울림. 요즘 지나치게 PC 주의가 난무하는듯. 각종 도 그렇고. 이런것을 가르치는곳이 대학이지요 1,000원밥이 청년들을 위한다? 알바비가 시간당 거의1만원급인데? ㅎㅎㅎ 美 명문대들, 학생들의 과도한 PC주의 제동... “표현의 자유 침해 안돼” 김나영 기자 입력 2023.04.14. 04:17업데이트 2023.04.14. 07:59 17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코넬대 캠퍼스 전경/플리커 미국 뉴욕주(州)의 명문대인 코넬대 학생회는 지난달 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성폭행·자해·인종혐오 범죄 등을 포함한 일명 ‘트리거 콘텐츠’에 대해 경고 표시가 붙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트리거(trigger)는 ‘방아쇠를 당기다’라는 뜻으로, 트리거 콘텐츠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포함된 자료 등을 .. 더보기
그래 그래도 조금씩 좋아지는 세상이지... 더보기
세상의 상식 더보기
이인규 “盧 돕지 않던 문재인·좌파 언론… 서거 후 喪主 코스프레” [김윤덕이 만난 사람]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통해 ‘노무현 사건’ 수사 내용 공개한 이인규 前 대검 중앙수사부장 김윤덕 선임기자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서울 종로구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이태경기자 “지금이 이재명 정권이었어도 책을 출간했겠느냐”고 묻자,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미간이 살짝 패었다. “물론입니다. 팩트잖아요. 이걸로 제가 시달릴 수는 있어도 저를 십자가에 매달 순 없습니다. 출간하지 않을 거면 제가 왜 5년 동안 이 책을 썼겠습니까.” 이인규(65)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지난달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조갑제닷컴)는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란 부제가 암시하듯,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뇌물수수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더보기
매직 패스 이야기 매직패스로 온라인이 뜨겁다 경쟁은 악인가 세상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평등해야 만족할까 우주안에 평등이란 없는 것이고 자연의 원리가 경쟁과 도태의 연속아닌가 아니 만유인력이라는게 제 질량만큼 끌어당겨 점점커지고 딸려가면 끝인 것 아니냐고 봄 스키를 타러가면 눈이 많이 오는지역의 나무들 밑둥이 드러나는데 나는 이것을 보러 산에 간다 숙연해지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세계야 약육강식 적지생존이라서 서로 잡아 먹고 이긴놈이 살아남는 세상이라고 치자 그럼 식물은? 나무는? 산에 나무는 왜 모두 천년이 안되었을까 아무도 베지 않고 산사태도 지진도 산불도 천년간 일어나지 않았는데? 같은 구릉에 똑같이 날라와 싹을 틔운 나무도 나올때 부터 혹독한 경쟁속에 자라나고 수없이 많은 시련을 거치며 도태된다 .. 더보기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더보기
“퇴직하면 뭘 하지?” 80대 선배들이 알려준 지금 해야 할 3가지 [행복한 노후 탐구] 은퇴 3대 불안은 건강·통장·고독 인생 대선배들의 금쪽 해결법 “퇴직하면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아무리 유능하고 성실한 직장인이라도 언젠가는 마주쳐야 하는 정년. 약간의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때가 닥친다. 불안하고 막막한 퇴직 이후의 삶,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나보다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조언이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80대 선배들이 “퇴직하고 나서 이걸 하길 참 잘했다, 시간을 되돌려도 이것만은 꼭 하겠다”고 추천하는 건 무엇일까? 일본 잡지 프레지던트가 이달 초 80대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가 ‘퇴직 후에 해서 참 좋았던 3가지’를 정리해봤다. /일러.. 더보기
석굴암 석굴암은 한참동안 잊혔다가 1907년에 토함산을 지나던 한 일본인 우편배달부의 의해 발견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1912년부터 1915년까지 3년간 걸쳐 일제에 의한 대규모 보수공사가 있었다. 첫 번째 수복때 석굴암은 붕괴 직전의 상태였다. 천장이 새서 불상이 직접 비를 맞고, 주변의 불상의 배치도 불분명했으며 전체의 반이상이 돌과 흙에 파묻혀 있었고 그 틈새마다 잡초와 넝쿨, 이끼가 덮여 있었다. 최초의 보수 후에 비가 새는 것이 발견됐고, 그 후의 보수에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의 복원공사는 석굴암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건축원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채로 전실과 주실 전체를 시멘트로 1미터 이상 덮어버린다. 다음은 비도의 윗부분에도 시멘트를 이용해 석축옹벽을 쌓고, 진입로 역시 .. 더보기